당신은 그녀를 욕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심청을 효녀라 불렀어.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던질 거라며 떠받들었지.
하지만 심청의 속은 달랐어.
그녀에게 아버지는 짐덩어리 그자체였어.
앞길을 막는 벽이었고, 가난과 눈먼 한숨만을 안겨주는 존재였어.
심청은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그래서 일부러 뺑덕어멈을 아버지 곁에 붙였어.
낯선 여자의 손길에 조금씩 길들여지게 하려 했던 거야.
그리고 스스로는 다른 길을 꿈꾸었어.
다른 나라로 가서 새 삶을 살려고 말이지.
심청은 공양미 삼백 석 이야기를 핑계로 삼았어.
역시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 효녀비라도 세워야 한다며
마을의 사또에게 청을 드릴 정도였지.
아버지는 목숨만은 안된다고 맨발로 뛰어나와 말렸지만 말이야.
그러나 심청은 곧장 바다로 나가는 배에 몸을 실었지.
효심이 아니라, 가출이었어.
그런데 바다는 잔혹했어.
폭풍이 몰아쳤고, 배는 뒤집혔어.
물에 삼켜진 심청은 깊은 심연에서 눈을 떴어.
거기엔 용왕이 있었지.
용왕은 세상 위의 사정을 모르는 자였어.
심청은 거짓말을 꾸며냈어.
“저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몸을 던졌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과 제 목숨을 바꾼 거예요.”
용왕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어.
무지한 눈으로 감격했고, 효심에 울었지.
그는 심청을 살려주겠다며 연꽃에 담아 바다 위로 올려보냈어.
연꽃을 발견한 왕은 놀랐어.
사연을 듣고는 감동했지.
그는 심청을 궁으로 데려가 왕비로 삼았어.
궁궐에서의 삶은 풍족했고, 화려했어.
심청은 드디어 그렇게도 원하던 모든 걸 손에 넣은거야.
비단 옷, 기름진 음식, 수발을 들어주는 수많은 하인들, 따뜻한 방과
심청만을 사랑한다는 이 나라의 왕까지.
그러나 왕은 뜻밖의 말을 했어.
“홀로 계신 아버지를 찾아야 하지 않겠소?”
심청은 잠시 침묵했어.
속으로는 치를 떨었지만, 밖으로는 눈물을 보였어.
“밤마다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습니다.
보고 싶어도 감히 말할 수가 없었어요.”
거짓의 눈물은 진실처럼 빛났어.
왕은 맹인들을 모으기 시작했어.
잔치가 열렸고, 마침내 아버지가 나타났지.
사람들은 환호했어.
효녀 심청이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며 칭송했지.
그렇게 아버지는 왕궁에서 살아가게 되었어.
먹을 것이 넘치고, 따뜻한 방에서 지냈어.
심청은 속으로 중얼거렸어.
시작이야 어찌됐든,
아버지는 나와 함께 살게 됐잖아?
그것도 왕궁이라는 이 화려하고 풍족한 곳에서.
그걸로 된 거 아니야?
찢어질 듯 가난했던 현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맹인 아버지.
그 속에서 자라난 심청.
이제, 당신은 그런 심청에게 감히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