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당신 차례야
사람들은 내 머리카락을 축복이라 불렀어.
황금빛이고, 길고, 잘라도 다시 돋아나는 머리카락.
그걸 가지면 행운을 얻는다고 믿었지.
왕자는 나를 사랑해서 구한 게 아니었어.
가여워서도 아니었어.
그는 신의 사명을 받은 듯, 어줍잖은 선민사상에 도취돼 있었지.
그리고
"저 불쌍한 소녀를 해방시킨 건 나였다."
그 말이 주는 명예가 필요했을 뿐이야.
곧 알게 됐지.
내 머리카락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라는 걸 말이야.
나를 구했다는 소문을 등에 업고 왕으로 등극한 그는
내 머리카락에 환상을 입혀
외교의 선물로, 시장의 상품으로, 전쟁의 부적으로 삼았어.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머리카락 덕에,
왕에게 나는 최고의 외교수단이자 돈줄이었지.
궁전 앞에는 내 머리카락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그들은 한 올이라도 얻으면 아이가 태어나고, 병이 낫고,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었어.
나는 매일 머리카락이 잘려나갔고, 잘라낸 곳에서는 매일 다시 자라났어.
탑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더 큰 시장에 팔려나온 것뿐이었지.
마녀의 탑은 감옥이었지만, 세상의 시장은 훨씬 잔혹한 지옥이었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건 구원이 아니라 거래라는 걸 알게 되는 것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
나를 인간으로 보는 이도 없었고, 나를 동정하는 이도 없었지.
머리카락만 있었고, 그 머리카락으로 권력을 사고파는 손길만 넘쳐났어.
그때 깨달았던 거야.
마녀는 날 가둔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숨겨준 거였다는 사실을.
그녀는 악이 아니라, 차라리 은신처였을지도 몰라.
나는 결국 마녀를 이해하게 되었고, 언젠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래서 나는 마녀가 되었어.
그리고 또 다른 소녀를 탑에 가뒀지.
나처럼 머리카락이 길고, 나처럼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를.
나는 속삭였어.
“이곳은 감옥이 아니란다. 세상은 더 잔혹해. 나는 널 지켜주는 거야.”
언젠가 그녀 역시 알게 되겠지.
구원은 없었다는 걸.
머리카락은 행운이 아니라 저주였다는 걸.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똑같이 반복된다는 걸.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나는 더 이상 이용만 당하는 한심한 멍청이가 아니야.
내 머리카락은 이제, 그들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될 거야.
탑을 부수겠다 외치던 자들, 행운을 사겠다 줄 서던 자들,
그들의 숨통을 내 손으로 죄어줄 거야.
다음 차례는 소녀가 아니라,
너희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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