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어머니, 꼼지락대는 나무들이 언 땅을 녹이고, 제 몸 가득 물을 머금어 계절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앙상하다'라는 말은 '물오르다'의 과거형임을 압니다. 어머니의 늙음이 내 푸른 날의 과거형임을 압니다. 나의 빛나는 청춘은, 말라버린 당신의 현재마저 오랜 세월 속에 묶어두었다는 것을 압니다.
이 고백은 평생을 헌신한 당신께 드리는, 나의 수줍은 기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을 알되 말하지 못하는 못난 딸의 사랑법입니다. 무릎 꿇은 채, 쓰러진 나에게 먹여주신 다디단 나무의 수액도, 당신 몸을 상해 만든 끈적한 피였음을 이제는 압니다. ‘애쓰지 마라’ 던 말씀도 ‘그냥 두어라’는 말씀도 밀어닥치는 봄 앞에서는 그저 무방비로 수긍할 뿐입니다.
차갑고 맑은 물이 흐르는 봄의 개울가에서 흙 묻은 호미를 씻습니다. 깨끗해진 호미로 살푼 할미꽃 한 뿌리를 캐어 오던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습니다. 고개를 수그린 할미꽃은 젊어서도 늙은 꽃이라고 말해주셨지요. 늙은 할미꽃의 젊음이 좋아서, 심장에 펌프질 해대는 그 삶의 충동이 좋아서, 봄을 맞는 나의 피는 언제나 초록입니다.
죽었던 가지에서 새잎이 나는 봄의 신화를 착잡하게 바라봅니다. 제 몸의 모든 물을 버리고 추위를 견뎌낸 것들에게 봄의 정령이 깃듭니다. 이는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요.
가물어 푸석해진 텃밭에는, 지난겨울 얼었다 죽었다를 반복한 동초가 꽃대를 올려서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그 노랑의 들판에서, 지조 없이 뿌려진 향기에 취해 정신을 잃습니다. 손끝이 매운바람이 꽃대를 쥐고 흔들어 댑니다. 비틀거리는 꿀벌과 장난질을 치는 듯도 보이고, 잠든 아기를 위해 꿀벌을 쫓아 내는 손짓으로도 보입니다. 나는 그런 흔들리는 풍경 속에 있었던 지난날을 기억해 냅니다. 그것은 장자의 나비가 해낸 기억과도 비슷한 것이어서, 취생몽생(醉生夢生)으로 마구 흔들립니다.
<두 번째 편지>
어머니.
싹 난 감자의 눈을 떼고, 아궁이의 재를 모아서, 뒤섞어 둡니다. 쪼그라든 살 조각에서 퍼런 눈이 움찔거립니다. 그 안에서, 하지의 긴 허기를 달랠 감자가 생겨난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한 덩이의 온전한 썩음이 지상을 푸르게 합니다. 땅속의 내밀한 약속을 알 길 없는 나는, 은밀하게 알을 키우는 감자에게 인내를 배웁니다.
'감자꽃이 예쁘지?' 하셨던 어머니는 감자꽃을 꺾어서 내게 주셨지요. 꽃을 따내야 알맹이가 실해지는 이치를 어른이 되어 알았습니다. '감자꽃을 다 따거라' 하셨던 명령은, 내게는 세상에 없는 즐거운 놀이였음을, 어머니에게는 자식을 먹일 지혜의 완곡한 말씀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산골을 따라 흐르던 물소리가 제법 커지면, 새소리도 덩달아 높아집니다. 먼 하늘에는 수리들이 떠다녔습니다. 새들은 제 양력의 힘만큼 떠서 서로 하늘길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모두 제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들의 날갯짓은 그저 위아래로 흔드는 어설픈 몸짓이 아니라는 것을, 바람을 밀어내는 저만의 방식으로 오르고 내리는 질서가 있음을,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제비가 찾아오면 진짜 봄입니다. 먼 하늘을 날아오는 새의 머릿속에 나침반이 들어있다고도 하고 몸 자체가 거대한 자석이라고도 합니다. 극을 찾아 움직이는 바늘처럼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과학으로 설명했지만, 나는 땅을 박차고 오르는 그들의 역동과 활강의 여유로움을 보고 알아챘습니다. 떠나야 할 순간 깃털의 온도와, 수천 킬로 바람의 길이 열리는 날을 그들은 알고 있다는 것을.
바람의 길을 타고 멀리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려고, 작년의 제비집을 부수지 않았습니다. 빈 둥지에 생명이 들어오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잇대어 갈 때, 나는 우주의 질서에 순응한 성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은 매 순간이 황홀했습니다. 눈을 뜰 수도 눈을 감을 수도 없는 순간의 경이로움 앞에서,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빈 빨대로 물을 빨아올려서, 봉오리 꽃을 키워내는 나무에 귀를 대 봅니다. 봄의 노곤함 속에 줄기를 가득 채운 물소리를 듣는 것은, 나를 흐르게 합니다.
새 움이 트는 아침이 기다려졌고, 푸슬푸슬한 밭을 일구는 어머니의 호미질 소리가 좋았습니다. 혼곤하게 물들이는 새벽노을은 꿈결 같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불우한 시인이 버리지 못한 봄날의 잔상 같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다가올 봄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고 오는 것에 연연하지 않음에도, 왠지 날개 돋친 채로 새를 따라가 버릴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황홀했던 기억 속으로 마냥 흘러들까, 저는 근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