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 대해 생각한다. 시의 언어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욕됨을 말하는 시를 쓴 적이 없다. 나는 살해의 미소를 다룬 시를 알지 못한다. 시의 언어는 폭력적이고 비굴하고 비린내 나는 것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안다. 시란 시인이 밟고 선 세상의 흙으로 버무려지고 뭉쳐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토양이 무엇인지, 곧 알아챈다.
모래의 땅에 선 시인은 빈번하게 등장하는 낱개 모래의 말을 동원한다. 바스라지고 흘러내리는 사질의 말을 겨우 쌓는다. 그에게 적합한 시는 부서지고 사라지고 쪼개지는 것들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그의 시는 뭔가를 뭉치거나 형상을 주조해 유통시키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처연하고 아름답다.
바람의 땅에 선 시인의 시는 굳세다. 그는 바람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질문과 감탄의 말을 그는 쉴 새 없이 주워 담아야 한다. 결국 그는 말을 모을 수 없는 제 땅의 운명을 알아챈다. 시인은 말의 파도 위에 높이 연을 올리고, 연줄을 잡아 바람 위에 시를 띄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역동적이고 초월적인 성정이 있다.
진흙의 땅에 선 시인은 유연하면서도 단단하다. 욕된 세상의 일부로 존재하는 자신을 이내 알아차린다. 그는 거대한 말을 다루지 않고 타동사로 강제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대개 그러하다는 류의 자동사를 통해 흙의 무름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 무름이 굳어지면 자동사가 타동사를 넘어서는 힘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현재에 있지 않고 미래에 머문다.
시인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자신들의 세상에서, 오로지 저만의 언어로 외친다. 그들은 평범한 시어로 욕됨을 표현할 수 있다. 언어에는 욕됨을 표현하는 상스러운 말들이 있지만 시인들은 일상의 말을 사용하면서 욕됨을 에둘러 표현할 줄 안다.
시인들의 언어는 정돈되고 젊잖아 보이지만 그것으로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고 뒤통수를 쳐서 각성시킨다. 그들은 비천한 언어를 주물러서 고귀한 뜻을 전한다.
시인들은 사금을 캐기 위해 삶의 하류로 몰리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만, 그들은 사금에는 뜻이 없다. 시인들은 하류에 머무르면서도 하류의 삶을 살지 않는다. 그들은 빛을 감추고 세상과 섞여 살며, 빛이 나되 눈부시지 않은 인생을 통해 세상의 낮고 어지러운 것을 가지런하게 한다.
시인은 가난을 업으로 삼고 산다. 그들은 잘생긴 나무가 되려 하지 않고, 못생긴 나무가 되어 오래오래 우리의 삶과 지친 마음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