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직장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세간에 흑돼지에 대한 풍문이 돌았다. 지금까지 먹은 삼겹살과 다른 차원의 맛이며 제주도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반은 틀린 소문이었다. 서울에도 제주도 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은 있었다.
소문의 나머지 반은 맞았다. 태어나 처음 겪는 혁명적인 맛이라며. 역시 서울에 와야 세상을 알게 된다며. 두 시간을 떠들며 소주와 함께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친구와 나는 그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맛을 추억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알았다. 그 식당 어디에도 고기가 흑돼지라는 말은 없었다는 사실을.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날 역사상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은.
사례 둘
아내와 나는 해산물에 약하다. 비린내를 견디지 못하는데, 먹을 수 없기에 관심도 경험도 없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영양소에 대한 의무감, 우리도 먹을 수 있다는 자존심, 그런저런 이유로 해산물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킹크랩은 킹크랩이었다. 원래 그렇게 생긴 생물이니까. 이어 광어회가 등장했는데 붉은 살에 기름기가 많은 두꺼운 회였다. 머릿속에 스치는 광어회의 모습과 조금 달랐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충분히 맛있는 광어였다.
비린내가 치사량에 도달할 때쯤 깨달았다. 우리가 먹은 광어는 방어였다는 것을. 주인아주머니와 소통 문제였다. 광어. 과왕어. 바왕어. 방어. 아마도 광어는 방어로 그렇게 진화했으리라.
결말
그렇다. 정신은 생물의 종도 맛도 바꿀 수 있다. 정신의 힘. 현상에 휩쓸리고 현실에 휘둘려 그 힘을 자꾸 망각한다. 세상이 더 아름다울 수 있도록.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정신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