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많이도 걸어 다녔다. 등하교 같은 목적 있는 걸음을 제외하고도 정처 없는 걸음이 많았다. 한 시간이면 족히 다 돌아 볼 수 있는 작은 도시, 작은 아이에게는 꽤 커다란 모험 장소였다.
고향에 비하면 서울은 무한한 모험 세계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진 길. 그 길 위에 놓인 건물, 사람, 소음. 도무지 걷지 않을 수 없는 매혹스러운 세계였다. 학교를 마치면 신촌에서 연신내까지 걸었고, 주말에는 광화문 강남 발길 닫는 곳 어디든 걸었다.
그즈음 달리기도 시작했다. 불광천을 따라 한강까지 달려 내려갔다 돌아오고는 했다. 러닝? 마라톤? 운동?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서울이라는 매력적인 세계 속에서 걷고 뛰는 일. 단지 그뿐이었다.
거처를 은평구, 마포구, 강서구, 영등포구, 성동구로 계속 옮기면서 부지런히 걷고 달렸다. 동대문 회사에서 강서구까지 걷고, 서울 둘레길을 따라 안양까지 걷고, 구파발까지도 걸었다. 달리기는 주로 공원이었다.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한강, 영등포공원, 여의도공원, 서울숲. 사는 곳이 어디든 걷기와 달리기는 늘 함께였다.
회사를 옮기며 여유를 잃어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점점. 달리기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고 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리고 있다. 살기 위해 달려야 하는 삶. 순수했던 길 위의 행복은 달린 저만큼 뒤로 멀어지고 있다.
문득. 돌아가기로 했다. 운동 강도. 달리기 속도. 모든 걸 내려놓고 천천히 편안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 전경, 지나다니는 사람, 흐르는 하천의 물.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그 시절 사랑했던 서울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길 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다시, 한 걸음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