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왕은 우물 안 세계를 빠삭하게 꿰고 있다. 오래 머문 만큼 축적된 지식이 많고 타인과 쌓인 관계망이 촘촘하다. 지식과 관계 우위를 업은 왕은, 자신을 스스로 권위자라 여긴다. 우물 속에서 끊임없이 권위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데, 우물 밖에서는 무의미한 권위이기 때문이다. 끊기 어려운 우월감의 달콤한 맛. 그 진한 맛에 도취된 왕은 눈과 귀를 모두 닫아버린다. 왕은 대체 불가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문제는 청개구리의 유입이다. 왕은 세계에 침입한 이물질에 단계적으로 대응한다. 처음은 청개구리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똑같이 행동한다. 짐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일세. 청개구리는 의아하다. 다음 단계는 회유다. 청개구리를 어르고 달래어 왕의 권위를 이해시키고자 한다. 여전히, 청개구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마지막 단계는 협박이다. 왕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잘라버리겠다. 혹은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겠다.
왕이 이용하는 주요 수단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지속해서 상대의 생각을 무시하고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왕은 상대가 자기 생각에 동조할 때까지 이 행위를 계속한다.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 반복하면서. 상하관계가 분명한 우물 속 문화적 특성이 가스라이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왕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한편, 왕은 우물 밖에서도 권위를 세우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바깥 세계의 관점에서 개구리 왕은 궤변론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조급해진 왕은 타 권위를 빌리는 선택을 한다. 이를테면 청자가 속한 세계보다 더 큰 세계 또는 더 높은 세계에 관한 얕은 지식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행위다. 그렇게 갈수록 궤변의 질이 높아진다.
자아도취가 임계점을 넘은 왕은 자신을 신격화한다. 개구리 신이 된 왕은 급기야 “나를 경외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내뱉는데, 이는 분명 개구리 왕 중 가장 완성된 변이 형태라 볼 수 있다. 이 완성체를 접했을 때 느낀 충격과 공포의 느낌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십 년에 걸쳐 개구리 왕을 관찰해 왔고 끝내 완성체를 보았다. 관찰기는 여기서 일단락 짓지만, 세상은 넓기에 탐구의 영역은 항상 열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