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놀라운 일이 무척 많다
문득. 채소 진열대에 앞에서 진지하다. 애호박이 어떻게 비닐에 빡빡하게 들어가 있을까? 불가사의다. 가끔 궁금할 뻔했지만, 본격적으로 호기심이 발동한 적은 없었다.
아내가 정답을 알려준다. 아기 호박 때부터 비닐에 넣어서 키우는 거라고. 불편한 진실 앞에 숙연해진다. 일생을 비닐에 갇혀 더 크게 자랄 수 없는 호박. 속박된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연이은 야근. 구내식당 저녁 식판에 애호박무침이 얹혀 있다. 젓가락으로 애호박을 집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밤거리가 퇴근하는 사람, 회식하는 사람으로 뒤섞여 있다. 이 건물을 벗어나 더 크게 되는 날이 올까? 건물에, 조직에, 갇힌 삶을 자조하며 조심스레 호박 무침을 다시 집어 든다.
늦은 밤. 피로한 몸을 택시 창가에 기댄다. 서울이, 세상이 창밖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나만, 내가 탄 택시만 멈추어 있다. 문득. 애초에 벗어날 의지가 있는지 자문한다. 학교에, 회사에, 그렇게 맞추어 살아온 삶이었다. 누군가 씌어 놓은 비닐만큼의 세상. 규격화된 크기로 자라 최상급 상품이 되어버렸다.
애호박. 비닐이 터질 것 같을 정도로 커진 애호박. 그 치열한 흔적을 보며 다시 한번 숙연해진다. 나를 속박하는 한계를 뚫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을까?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변명으로 자신을 스스로 속박하지는 않았을까.
오늘의 끝자락. 깜깜한 밤을 뚫고 달리고 또 달린다. 숨이 턱 막혀 한계라고 느낄 때까지 달린다. 한계에 도달해야 넘을 수 있는 시도도 가능할 테니. 변명은 넣어 두어야 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치열한 애호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