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라디오를 곁들인
연휴 시작 하루 전 출장. 서울 시내는 걱정만큼 복잡하지는 않았다. 구불구불 느릿느릿. 늘 그런 곳이니 그러려니 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도저히 그러려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긴 자동차 행렬이 천천히, 천천히 움직였다.
출장지로 가는 길 5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 5시간. 꼬박 10시간 운전대를 잡았고 그 10시간 동안 라디오를 들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풍경 위로 라디오 소리가 느긋하게 흘렀다.
아이 유치원에 보내놓고 차 한잔하면서 라디오 듣고 있어요. 햇살이 따뜻하네요.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입니다. 꽃 주문하고 일하러 가는 길입니다. 두 달 만에 처음 쉬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라디오 듣고 있어요.
이토록 무해 하고 느긋한 이야기라니. 꽤 오랜만이다. 문득 잠깐 멈추어 돌아본다. 유튜브, 넷플릭스, 인터넷 기사. 자극적이고 빠른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았다. 그 속에 갇혀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잊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차는 천천히 움직였다. 창밖 하늘은 먼 곳부터 천천히 붉은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제목도 가사도 모르는 오래된 팝송이 낮게 흘렀다. 이토록 막히는 도로 위에서 오랜만에, 꽤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꼈다.
갈수록 빨라져만 가는 세상. 빠른 순간을 멈추기 위한 자극적인 이야기. 세상에 맞추기 위해 내가 빨라지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어지럽다. 왜 한 걸음 멈추어 천천히 돌아볼 시간도 가지지 못했을까.
멀고 길었던 출장길. 느린 움직임 느긋한 음악 평온한 이야기 있는 길. 그 길 위에서 보낸 길고 긴 시간이 평온했던 이유는 어쩌면, 우연히 찾아온 멈춤의 시간 덕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