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며 까까머리 되기

항암 후 탈모시작

by Mirmamang

내 생애 첫 항암 후 지옥과도 같던 열흘의 시간 동안, 나는 설사와 식욕 부진, 입안과 혀에 생긴 수포라는 고통 속에서도 조금씩 적응하며 버텨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통 하얗게 수포로 가득 덮여 있는 혀를 보고 있으니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닌 듯 마음 한편은 자꾸만 약해지고, 그 무게를 이기기 점점 힘들어졌다. 항암제는 암세포를 없애는 것만큼이나, 내 모든 열정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한 듯했다. 운동을 할 힘도, 하고 싶은 마음도 점차 사라졌고, 책 한 권 읽으려 해도 눈이 시리고, 눈물이 고여서 5분도 채 못 읽고 내려놓았다. 프랑스 자수에 도전해보려고 했지만, 눈에 통증이 몰아쳐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은 점점 유령처럼 느껴졌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 와중에 남편은 내게 “지금은 책도 읽지 말고, 그냥 재미있는 프로그램 보면서 많이 웃어.”라며 다독여 주며 안방을 편안하고 아늑한 최고의 특실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주문한 실내 자전거를 침대 옆에 세워두며, 언제든지 몸이 준비되면 타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 작은 배려와 위로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버텨내야 하는지 모르는 나에게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내게 다가올까 하는 걱정에 머리카락이 빠질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머리를 만지는 것조차 두려웠다. 머리를 감을 때도 최대한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군가는 항암 후 열흘이 지나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 매일매일 빠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견뎌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새 15일이 지나자, 내 머리카락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는 일도 일상이 되어갔다.


이제는 그 머리카락을 원형 탈모처럼 남겨 둘지, 아니면 밀어버릴지 결정하는 고민이 일었다. 원형탈모처럼 빠진 머리카락을 그냥 두면 나조차도 작아지는 느낌이 들 것 같았고, 차라리 밀어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항암을 하는 날 머리를 쉐이브 하기로 결심했고, 가발을 구매한 샵에 미리 예약을 잡았다.


예약 당일, 다행히 그 샵에는 우리만 있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해 커튼이 쳐진 공간에 앉아, 나는 머리카락이 이발기로 깎이는 순간을 하이퍼랩스로 기록했다. 완전히 밀어버리지는 않고, 2차 감염 우려가 있어서 1센티 정도 남기고 정리한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범한 척, 슬프지 않은 척, ‘척’이란 척은 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마음이 가득 찼다. 그래도 어쩌랴. 머리카락 잘려나간다고 울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


이 또한 치료의 한 과정이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머리카락이 깎이던 순간, 내게 남은 것은 복잡한 감정들뿐이었지만, 끝내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임을 다짐하며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거울 속엔 까까머리 중학생 모습을 한 중년의 내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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