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 너라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부산여행

by Mirmamang

항암제의 특정 성분은 암세포를 공격하는 동시에, 안타깝게도 모낭세포나 피부세포까지도 파괴한다. 유방암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도세탁셀(Docetaxel)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내 머리카락도 서서히 빠져나갔다. 치료 기간 동안 탈모와 손발 저림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마음으로 냉감모자와 냉감장갑, 냉감양말을 착용했다. 덕분이었을까?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은 지 3개월이 지나고부터, 가뭄에 콩 나듯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5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머리숱이 적은 까까머리 중학생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항암치료를 위해 스스로 밀었던 머리. 그 머리가 다시 자라면서, 치료 전의 모습과 닮아가기 시작한 나를 거울 속에서 마주했다. 돌고 도는 시간 속에서도 잘 견뎌준 나 자신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50904_233454787.jpg 냉감모자 착용한 나@mirmamang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간다는 모든 생각을 스스로 차단하며 살았다. 내 삶의 1순위는 언제나 가족이었기에, 나를 위한 개인적인 시간은 사치라고 여겼다.


그러다 암에 걸렸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다 빠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아는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는 병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내가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동생이 부산 여행을 제안했다. 망설이고 있을 틈도 없이 남편은 “얼른 다녀와”라며 기다렸다는 듯 KTX를 예매해 줬다. 어깨가 불편했던 나는 최소한의 짐만 챙겨 기차에 올랐다.


부산 여행은 내게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다.
병을 통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고, 내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숨구멍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여정이 온전히 따뜻하게 기억되는 데에는, 그 자리를 제안해 준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던 동생이 있었다. 여행 내내 그녀는 말없이 내 속도를 따라주고, 짐을 챙기고, 걷다가 내가 멈추면 아무 말 없이 같이 멈췄다. 겉으로는 "언니, 여기 맛있어 보여!" 하며 가볍게 끌고 다녔지만, 최강 P의 그녀가 미리 사전검색을 해서 계획을 세웠고, 뒤에서는 내 컨디션과 일정을 하나하나 남편에게 몰래 공유하고 있었다는 걸 여행 둘째 날 밤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안정감, 하지만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그녀는 나를 챙기되, 내가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아마 내가 무너지지 않게, 또 혹시라도 급하게 상황이 바뀔 경우를 대비해서 남편과의 조용한 연결선을 유지하고 있었던 거다. 그건 걱정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배려였고, 나는 그런 울타리 안에서 오랜만에 편히 숨 쉴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을 아끼는 사람 곁에 있을 때, 무너지지 않는다.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전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꼭 말하고 싶다.


"그 여행, 나한텐 참 큰 선물이었어. 너라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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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 올라가 먼 바다를 바라보며@mir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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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 산책 & 우리만의 광란의 파티@mir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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