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오늘도 당신 덕분에 숨 쉴 수 있었어.
작년 6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이후 우리 집은 초긴장 모드로 전환되었다.
남편은 내 병원 진료 일정은 물론, 식사와 운동을 챙기면서 동시에 1호기, 2호기, 3호기 세 아이들의 식사, 등하교, 학원 라이딩까지 도맡았다.
아침 7시.
아이들을 깨우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특히 잠이 많은 2호기는 몇 번이고 방을 들락날락하며 깨워야 했다.
밤에는 드림렌즈를 착용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렌즈를 빼서 세척해줘야 했고, 그 후엔 주방으로 가서 세 아이의 물병에 물을 채우고, 간식을 싸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 모든 일은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남편과 나눠하던 일, 혹은 내가 주로 맡았던 일들이다.
하지만 항암 치료 기간 동안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것 조차 고된 일이었기에, 결국 모든 것이 남편의 몫이 되었다. 조금씩 컨디션이 좋아지는 날에는 물병에 물을 채우거나, 빨래를 개는 등 소소한 집안일을 거들기도 했지만, 수많은 일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라 티도 잘 나지 않았다.
식사, 약, 산책, 그리고 간이의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남편은 신선한 야채와 단백질이 포함된 아침 식사를 준비해 나와 마주 앉아 함께 아침을 먹었다. 주방까지 나가는 것조차 힘든 날에는 내 방까지 식사를 날라다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약을 먹고 나면,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남편은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브라우니를 데리고 산책을 준비한다.
우리 셋은 사람이 없는 공원을 찾아 느릿느릿 걷기를 한다. 내 속도는 최선이지만, 눈에 띄게 느리다.
우리가 찾는 공원에는 벤치가 없기 때문에, 남편은 한 손에 간이 의자를, 다른 손에는 브라우니의 목줄을 잡고, 내 숨이 가빠지거나 걸음이 멈칫할 때면 바로 의자를 펴서 쉬어가게 해 준다. 그 모습이 고마우면서 참 안쓰럽다.
짬뽕 한 그릇도 그의 손으로
산책 후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휴식을 취한 뒤 남편은 곧바로 점심을 준비한다.
나는 메뉴 선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힘겹게라도 먹고 싶은 메뉴를 이야기하면, 남편은 그날의 식사를 정성껏 만들어낸다. 어느 날은 짬뽕이 먹고 싶어 "시켜 먹자"라고 했더니, 남편은 건강한 재료로 짬뽕을 만들어 한 상을 차려냈다. 시켜 먹자는 내 말은 그에게 들리지 않았고, 그에게 있어 내가 먹는 모든 음식은 '정성'으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다시 휴식을 취하고, 남편은 남은 업무를 처리한 후 아이들 저녁 준비를 위해 간단히 재료 손질을 해둔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학원 뻉뻉이와 품앗이 라이딩
세 아이의 하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방과 후 활동을 하지 않기로 아이들의 약속을 받았기에, 다행히 하교 시간은 비슷했다. 아이들을 데려온 뒤에는 학원 뺑뺑이가 시작된다. 세 아이가 각각 한두 개씩 다니는 학원이지만 아이가 세 명이기에 남편은 여러 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다행히,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 엄마가 남편 혼자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품앗이 라이드를 해주는 날이 생기면서 숨 쉴 여유도 조금 생겼다. 학원을 그만두게 할까도 고민했지만, 남편은 “엄마의 빈자리를 아이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며 계속하겠다고 고집했다.(이 글을 빌어 라이딩을 도와준 엄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김밥 도시락을 둘러싼 감정.
아이들 소풍을 앞둔 어느 저녁날...여느 때 같으면 내가 김밥을 싸줬겠지만, 이번엔 힘들 것 같아 남편과 상의 후 간단히 샌드위치를 싸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소풍에는 김밥!”이라고 말하자, 남편은 재료를 배달시키고 김밥 준비에 들어갔다. 이미 샌드위치 재료를 사둔 터라, 괜히 감정이 상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도와줄 수도 없는 내가 화를 내고 말았다. 남편은 “엄마가 아파서 움츠러드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아프지 않았던 날처럼 김밥 도시락을 싸주고 싶었어.” 그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아이들은 김밥 도시락을 들고 기분 좋게 소풍을 갔고, 나는 미안함에 김밥에 손도 대지 못했다. 대신, 괜한 화로 그 감정을 표현하고 말았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좋았다가, 힘들었다가—업다운이 심한 끝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 시간이 조금씩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어도, 부작용은 여전히 남아 있고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이다.
당신 덕분에, 나는 하루를 더 살 수 있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매일 하진 못 했지만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말했다.
"고마워. 당신 덕분에 오늘도 숨 쉴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