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않기로 마음먹은 날

너의생일

by Mirmamang

매년 이맘때쯤이면 학교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와 3호기의 생일로 분주한 달이 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기로, 3호기와 나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작은 약속이 생겼다.

엄마의 투병이 1년을 넘기며 3호기는 제법 자신의 감정을 다룰 줄 알게 되었고 예전처럼 해맑은 웃음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던 나날이었다.


그날은 3호기의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날이었기에 아이의 얼굴은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아이가 아픈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채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다행히 3호기였다.
"아빠 바꿔 주세요." 왜인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

남편이 전화를 받고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전화기 너머로 3호기의 흐느낌이 들려왔기에 가슴은 이미 천 갈래로 찢겨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괜찮아. 3호기, 잘 놀고 있어."
그 한 마디 말고는 아무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 내 걱정을 모르는 척, 오늘 어떤 운동을 했고 3호기가 얼마나 신나 했는지만 이야기했다. 나는 조심스레 씻고 나온 3호기에게 물었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이의 대답은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엄마, 내가 말하면 엄마가 속상할 거야. 그래서 말하기 싫어."

그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나는 직감했다.
‘나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잠시 후, 3호기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물었다고 한다.
“너희 엄마는 왜 요즘 학교에 안 와?”
3호기는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지금 아파서 못 와.”

그러자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니 엄마 닭병에 걸렸구나! 꼬꼬댁!”

그 말에 3호기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고 했다.

“아냐!” 울면서 소리쳤고, 담임 선생님이 중재를 해주었지만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옆에서 달래주던 친구가 “그럼 엄마한테 전화해 봐”라고 해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울음을 꾹꾹 참으며 내 목소리를 들었을 아이의 마음.
아빠를 바꿔달라고 말했던 그 짧은 한 문장 속에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작은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얼마나 따뜻한지,
얼마나 성숙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항상 꼬맹이 같던 우리 막내가 이렇게 자라고 있었구나.

말보다 큰 마음으로, 아픔보다 더 큰 사랑으로...


엄마가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도 세상에 등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내 아픔과 힘듦 속에 숨어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오해 하나에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았던 그 마음을 엄마의 온기로 다시 채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곧 다가오는 3호기의 생일에는 반 친구들을 모두 초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몸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날 하루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3호기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생일’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체력은 여전히 따라주지 않았기에 점심 식사는 도시락을 배달시켰고, 케이크도 손수 만들진 못했지만, 예쁘고 맛있는 떡케이크를 정성껏 골랐다. 하지만 하나는 꼭 직접 해주고 싶었다. 작은 과일 플레이트.

정성껏 과일을 고르고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 색을 맞춰 예쁘게 담아냈다.


단순한 과일 한 접시였지만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담은 선물이었다.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가 얼마나 널 위해 다시 웃고 싶은지 이 접시에 담았단다."
말로는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백 번도 넘게 되뇌었다.


아이의 웃음, 아이 친구들의 환한 얼굴, 작은 박수소리와 케이크 촛불 아래에서 나는 오랜만에
'엄마로서의 나'를 다시 만났다.


3호기의 8살 생일케이크&주문한 도시락&내가 만든 과일플레이트@mir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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