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장 특별한 일 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혹시 모를 나의 죽음으로 아이들이 받을 상처’였고,
그중에서도 사춘기에 막 들어선 큰 딸, 1호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청소년문화해설사 준비반과 입과 과정을 함께하며 보냈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나는 아이를 너무 ‘큰 아이’로만 보고 밀어붙이고만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거기에
'엄마의 암 투병'과 '딸의 사춘기'라는 두 겹의 충돌이 더해졌으니...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누워있는 나를 보며
2호기, 3호기는 여전히 방에 들어와 인사를 건네고 이마와 볼에 뽀뽀를 해주었고
'내 모습이 어떠해도 이 아이들에게는 엄마이니 힘을 내야 한다'는 마음의 다짐을 주는 시간...
하지만 1호기는…
점점 내 방을 피하기 시작했고,
식탁에서 마주쳐도 내 눈을 피하며,
내 말을 흘려듣고 때로는 일부러 더 멀어지려는 것 같이 행동했다.
그 모습에 서럽고 속상한 마음만 커져갔다.
"엄마는 이렇게 아픈데, 왜 너는 날 봐주지 않는 거니?"
1호기의 세상은 한때 온통 엄마의 세상이었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의 세상이 조금씩 커지고,
엄마의 자리가 작아지는 건 당연한 일임에도 내가 아픈 상황이 되니,
그 당연함조차 마음을 콕콕 찔렀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눈썹도 숱이 많이 빠져, 낯설고 생소한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이 모습이...
아이가 보기엔 엄마가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복잡한 감정과 민감한 시기의 한가운데에 선 아이에게
내가 겪는 아픔이 늘 인지되리라 믿고 있던 내 생각이,
사실은 너무 단순하고 어리석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사춘기와 암,
서로 다른 이름의 폭풍이
우리를 각자의 방향으로 밀어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은 기다려보려 한다.
아이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엄마의 아픔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마음이 다 말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너의 사춘기와
엄마의 항암기가 겹친 시간은 우리 모녀에게 가장 힘들고 특별한 시간이었어.
엄마 인생의 처음은 항상 네가 먼저였다는 걸.
엄마는 너를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사랑한다는 걸...전처럼 니가 알아줄 날이 오겠지?
괜스레 핸드폰 사진첩을 들춰본다.
학교에 간 1호기와 찍은 사진을 찾아 헤매다 스크롤을 멈춘다.
세상에...
아무리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사춘기 아이라지만,
우리의 가장 최근 사진이 1년 전이라니.
그사이 나는 아팠고,
너는 조금 더 자랐고,
우리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음에도 점점 덜 마주하고, 덜 담아두며 시간을 흘려보냈구나.
이건 안 되겠다.
이번 주말엔 꼭 너와 데이트를 해야지.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엄마가 오랜만에 떼를 좀 써보려 해.
밥을 먹든, 영화를 보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
그저 너와, 나.
둘이 나란히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사진도 꼭 한 장 남기자.
오늘의 우리가 내년의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손 흔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