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처럼, 마흔 이후에도

짙은 아이라인 그리고 동태탕집으로

by Mirmamang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아이들 학교에서 같은 반, 같은 학부모회 일원으로 처음 만났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조금이나마 즐거운 추억을 더해주고자,
조금 귀찮고 손 많이 가는 일도 기꺼이 함께하며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일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시간 속에서,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서로를 믿고 도우며
우리는 도장 깨기 하듯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함께 시장에 가고, 칼국수 한 그릇 나눠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것을 함께 배우고, 웃고, 공감하고...
이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우리를 조금씩 더 단단하게, 깊게 이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에 어둠이 드리웠던 암 진단.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리던 그 시기,
그녀는 이미 5년 전 같은 병을 겪어낸 암 선배였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고통을, 내 침묵을, 내 두려움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주고 다가와 주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웅크리고 있을 때에도 그녀는 묵묵히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고,
때론 답도 없는 나 대신 자문자답하며 끝끝내 나를 지하세계에서 끌어올리려 애썼다.
그 사랑과 끈기는, 살아야겠다는 마음보다 먼저 "살고 싶다"는 의지를 일깨워주었다.


항암 치료를 끝내고, 조금씩 내 몸이 다시 나를 따라오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날도 그녀는 평소처럼 멋지게 눈화장을 하고 나왔다.
그녀의 아이라인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고 독특하다.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괜스레 들뜬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나도 그거 한번 해볼래.”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내 눈가에 아이라인을 그려주었고 순식간에 거울 속 내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 쎄보이고, 조금은 낯선 내가 그곳에 있었다.
마치 무료한 일상에 잠깐의 일탈을 한 것처럼, 새로운 나를 만난 기분이었다.


우린 그렇게 눈매가 날카로워진 채 동태탕 집으로 향했다.
쎄보이는 외모 덕분인지 괜히 자신감이 솟고, 괜히 웃음이 났다.
밤에 마주치면 눈을 피하고 싶어질 법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말이다.

그날의 점심은 그저 밥 한 끼가 아니었다.
병을 지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그 첫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곁엔, 늘 그렇듯 나를 일으켜주는 그녀가 있었다.

KakaoTalk_20250921_214651010.jpg
KakaoTalk_20250921_214310956.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