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삼 시 세끼'로 설계되었을까?
“배에 배터리 꽂고 충전하며 자고 싶다”
친정엄마의 염원이다.
모든 것이 귀찮아 씻기조차 거부하던 사춘기 시절.
‘머리카락은 왜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하며,
일주일 정도 감지 않은 머리 때문에
온 식구들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다.
“인류가 대머리라면 얼마나 편했겠어”
샴푸 안 써도 되니 돈 안 들지, 환경오염 줄이지
스타일링 고민 없고, 정수리 냄새에서 해방된다.
‘모자’라는 위대한 발명품이 있어,
자외선이나 추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머리카락은 정말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궤변으로
엄마한테 수없이 등짝스메싱을 당한 후
정신 차릴 만도 하건만
난 여전히 머리카락의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그 후엔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남길만한 것이 딱히 없었는데
요즘 부쩍,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부딪힌다.
아침 먹고 뒤 돌면 점심,
점심 먹고 뒤 돌면 저녁이다.
저녁을 차리러 싱크대 앞에 서서
‘밥’에 대한 고찰을 한다.
인간은 왜 ‘삼시 세끼’를 먹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간헐적 단식이 그렇게 좋다며.
그럼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졌어야지!
하루 세 번, 때가 되면
배꼽시계가 법석을 떠는데,
태초에 설계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하루 한 끼의 설계라면,
그리고 그 한 끼가 저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아침 안 챙겨도 될 텐데.
’ 한국인은 밥 심‘이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엄마라는 사람이 아침잠 줄이며 희생해야 할 이유도 없고…
출근준비 5분 만에 끝낼 수 있는 나는
30분은 더 잘 수 있다.
이게 아주 억울해 죽겠단 말이다.
“저녁만으로 24시간을 버티는 설계라면
먹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으면서,
시간적 여유도 있잖아.
세계 비만율도 낮아질 거야.”
라는 새로운 궤변을 늘어놓으며,
식칼을 꺼내 든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아니, 손은 의지보다 빠르다.
무의식의 흐름대로 난 양파를 썰고,
정신 차리고 보면
두부조림, 된장찌개, 양파김치가 내 앞에 있다.
뭔가 허전해서 달걀 프라이를 하고
묵직한 게 필요할 것 같아 고기를 굽고.
오만 잡생각을 하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으로 신나게 밥을 차리고 보면
놀라우리 만치,
조율이 잘 된 밥상이 내 앞에 차려져 있다.
내 안에 우렁각시 인가.
그렇게, 신나게 칼 춤을 추며 ‘한 상’을 차려내면서도
머릿속 한 편의 의문은 떨칠 수가 없다.
알약 하나로 삼시 세끼 해결되는 과학의 발전이거나,
하루 한 끼로 버티도록 인류가 진화하거나
둘 중 하나정도는 되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수 세기 간 모든 엄마들의 바람이었을 텐데
“인류의 발전이 어찌 이리 더딘가”
나만 밥 잘하는 인간으로 진화했다.
눈 비비며 어두운 주방에서 가스불을 올리는 내가
인류의 하루 한 끼 진화를 방해하는 걸까
그래,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밥상에 행복해하는 우리를 보니,
‘엄마’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하루 ‘세끼’ 일 수밖에 없겠다.
그 ‘한 상’에 자부심과, 든든함과, 사랑이 있으니…
"아니, 잠깐. 그래도 말이야.
그래! 내가 열 번 양보할게.
두 끼 일 수 도 있잖아.
왜 꼭 세 번 배가 고픈 거야? “
나는 또다시 싱크대 앞에서
냄비에게, 도마에게 끝나지 않는 대화를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