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석가모니, 너는 꼴뚜기

미워 죽겠어도 밥은 또 차린다.

by 선지혜


“앗, 따가워!”

심장을 찌르는 송곳 같은 그의 말에
내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아니, 나한테 대체 왜 이래? 왜 저럴까?‘

수십 번을 되뇌어도, 당최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 그날이 오듯

남편이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이번엔 ‘그날’이, 남편에게 온 모양이다.


당신도 그럴 테지.

문드러져 차마 꺼내놓지 못하는 그 속이 있을 테지.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걷던, 어제의 그 커플처럼

우리도 봄바람 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혹한기. 심장에 동상 걸리겠다.





그나저나 지금, 이 와중에

꼴도 보기 싫은 그 꼴뚜기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상을 차리고 있다. 내가.


참나, 원.


이러고 있는 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간 된 도리로서, 밥은 차려야지.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너를 굽어 살피는

나는, 관대한 석가모니. 품위 있는 아내.


그리고 너는, 꼴뚜기.



화해의 시그널도, 휴전의 선포도 아니다.

꼴뚜기가 먹을지 안 먹을지 묻지도 않고

일단은 상을 내었다.


얘들아, 밥 먹자~ 아빠 식사하시라 해!”

식탁을 세팅하는 아이들은

우리의 냉전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빠, 밥 먹어야 돼~ 빨리 와!”

아이들 부름에도, 대답이 없다.


차렸다는데 안 먹겠다 하기도 그렇고,

아닌 척 먹자니 쫀심 상하고…

‘먹느냐 마느냐’의 갈등 중인 듯하다.


남편이 반응이 없자, 아이들은 급해졌다.


엄마, 먹어도 돼?”

“아니, 아빠가 수저를 들면 먹어야지.”

“아! 아빠, 빨리 와! 배고파!”


아… 답답하다.

‘냅둬! 먹든지 말든지!’ 소리치고 싶지만

애들 앞에서 가장의 위엄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돌덩이를 꾹 눌러낸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못해 식탁에 앉은 이노무 꼴뚜기가,

기껏 생각해서 고기를 잔뜩 구웠건만

코앞에 있는 나물만, 김치만 공격한다.


‘뭐 하려고 이 짓을 했나…’

속으로 욕하며, 그의 앞에 고기를 밀어주는 내가 우습다.

미워 죽겠다면서, 고기는 또 주고 싶나 보다.





시간은 잘도 흐른다.


아이들 앞에선 아무 일 없는 듯.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아는 베테랑 부부

맡은 바를 묵묵히 수행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이들만 데리고 외식을 나간 자리에서

한참이 지나도 아빠를 찾지 않는 아이들이,

괘씸했다.


이놈의 자식들. 가족 외식에 아빠가 빠졌는데.


“아빠가 궁금한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거니?”

“아니! 나 지금 물어보려 했어.”


그때서야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아이들에게

왜 내가 서운한 건지 —



미워 죽겠는데도 장 보다가 생각나고,

아이들이 궁금해하길 바라는 나는, 모르겠다.


이것은 사랑인가 애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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