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씩 마음은 단단해진다.
“오늘은 김밥이야~~”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엔
매 달 체험학습이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김밥을 쌌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서로 누구 도시락이 더 이쁜가 내심 경쟁 하고
우리 엄마 도시락 자랑도 하면서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먹을 아이를 생각하면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는 것이,
참 설레는 일이었다.
큰아이 작은아이 도합 6년.
매달 김밥을 쌌음에도, 한 번도 귀찮았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열정적이었다.
내 아이 어깨에 뽕을 2미터 쌓아주기 위한
예쁜 도시락 싸기가
은근히 엄마들의 경쟁이기도 했었고,
난 지기 싫었다.
어쩌면 나 혼자만 경쟁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김밥 쌀 일이 좀처럼 없어
요즘은 괜히 서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아무 날도 아닌 날 종종 김밥을 싼다.
그 시절 작고 귀여웠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때의 설렘이 되살아 난다.
제 멋대로인 지금 아이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서,
최대한 그 시절 그 설렘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김밥을 싸는 일은, 내 마음을 싸는 일인 것도 같다.
집에서 가끔 만드는 김밥은 아이들에게도 별미다.
구색 갖출 필요 없이 냉장고를 구석구석 털어
아무렇게나 싸 먹는, 별거 없는 그게 참 맛이 좋다.
“이것도 넣을까? 얘들아 이건 어때? “
냉장고 속 재료들을 살피며 아이들과 함께 골라
굽고, 무치고, 볶는다.
준비된 재료들을 길게 늘어놓으면
아이들에게 ‘선택과 집중’의 시간이 온다.
무엇을 넣어 만들 것인가.
아이들은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며 김밥을 싸기 시작한다
“이건 누나 거야~“
웬일로 작은아이가 김밥을 만들어
선심 쓰듯 누나에게 내밀었다.
고추만 넣은 김밥이었다. 어쩐지…
‘아들아!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재료 고를 때 왜 고추를 골랐는지 이제야 알겠다.
고추김밥을 건네받은 큰아이가 헐레벌떡 내게 넘겼다.
“으아~ 고추김밥 싫어. 이건 엄마 줄래 ~”
의외의 재료를 넣은 알 수 없는 김밥을,
서로 선물하겠다고 난리법석이다.
”자~ 장난 그만하고, 제대로 만들자~ “
아이들은
각자 신중하게 고른 재료들로 김밥을 말았다.
그런데 이런, 김밥이 터졌다.
“아, 망했어! 이건 실패야” 하고
옆으로 치워 버리려는 아이를 다급하게 불렀다.
“오오오~ 터진 김밥 다시 보자! 이건 너무 욕심을 냈나 봐~”
욕심을 부렸다는 부정의 피드백이
아이는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오리주둥이를 하고는
터진 김밥을 다시 앞에 가져다 놓았다.
“다 먹고 싶은 네 마음 알겠는데,
조금 빼서 다시 싸면 예뻐질 거야~
밥이랑 재료 중에 어떤 걸 빼 볼까 “
김밥을 다시 펼친 아이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다. 참도 고민이 될 테지.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땐, 없어도 괜찮은 걸 먼저 빼봐. 그럼 좀 더 쉬워져~”
햄을 포기할 수 없던 아이는 밥을 조금 덜어냈다.
그리고 어설픈 손짓으로 나름 예쁘게 말아냈다.
집에서 김밥을 쌀 때 클라이맥스는
바로
두 손으로 잡고 크게 베어 먹는 썰지 않은 김밥이다.
아이는 자기 솜씨를 자신하며 한입 베어 물었다.
”앗! 좀 짠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기대와 다른 맛에
재료 선택에 실수가 있었음을 직감했지만,
아이는 맛있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끝까지 다 먹어치웠다.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완성에 대한 자기만족일까.
아무튼 울며 겨자 먹기가 따로 없다.
옆구리 터진 김밥은 조금 짜고, 조금 부족했어도
한 줄을 끝낸 아이의 얼굴엔
뿌듯함과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다음 김밥은 진짜 맛있게 만들 거야 “
맛도 모양도 성공적인 두 번째 김밥을 해치운
아이들이 올챙이 배가 되었다.
김밥처럼 삶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때가 많다.
터진 김밥처럼, 마음 한 구석이 터질 때
그냥 다시 펴서 조금 덜어내고
부족해도 끝내 말아 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 줄씩, 한 줄씩 말아가다 보면
아이의 마음도, 내 마음도
점점 더 단단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