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버무리다

갓 지은 흰 쌀밥에 쪽파 한조각

by 선지혜

지난봄 쪽파김치를 담았다.


이유식도 허둥대던 내가 김치를 담았다.

장하다 아주.


올해로 결혼 14년 차.

몇 해 전부터 도전해 본 김치가 이제는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김치 양념만큼 간단한 게 없다.

젓갈 따봉.


봄 쪽파. 대가리가 커서 씹는 맛도 좋다.


모락모락 갓 지은 찰진 흰쌀밥에

갓 버무린 알싸한 제철 쪽파김치를 얹어 먹을 생각하니

귀 밑이 찌릿찌릿하면서 뱃속이 요동을 친다.


매운 라면에 달걀 하나 탁 깨 넣고,

꼬들꼬들 면발 위에 얹어 먹는 그 쪽파김치.


된장 넣고, 월계수 넣고, 각종 야채와 함께 두 시간 푹 끓여낸

야들야들 보쌈고기에 얹어먹는 그 쪽파김치.


글을 쓰는 지금도, 갑자기 배고파지는 그 쪽파김치.


쪽파 왕단을 아이들 앞에 펼쳐 놓았다.

“자, 다들 붙어! 깝시다!”

“어? 이걸 까라고? 매운 거 아니야? “

“괜 찮 아! 일단 깝시다. 자 이렇게”


매울까 봐 겁내는 큰아이와

멋모르고 재밌다는 작은아이가 도란도란 붙어 앉아 쪽파를 깐다.


“아.. 매운 것 같아.”

“엄마! 눈물 나~”

말이 많다.


“신난다 그치? 우리 다 같이 파김치를 만들 거야~“

“엄마만 신난 거 아니냐고~“

“응 엄마는 신나“


묵묵히 껍질을 까는 엄마 옆에서

더 이상 투덜이 안 먹힌다는 걸 알아챈 아이들이

어느새 집중하며 껍질을 벗기고 있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파김치가 나왔다는 얘기.

덜 맵고 달콤하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

친구 뫄뫄가 중간 놀이시간에 사고를 쳤다는 둥,

또 다른 친구 뫄뫄랑 요즘 친하다는 둥…


쪽파를 핑계로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한단을 다 깠다.


드디어 끝났다며 도망가려는 아이들을 얼른 불렀다.

“어디 가요? 버무려야죠~”

“예~예”

저항 없이 발길을 되돌린 아이들 앞에

깨끗이 씻은 쪽파를 큰 볼에 담아냈다.


마늘을 넣고

“ 파에 마늘을 넣는다고? ”

젓갈도 넣고

“아 냄새 꾸리꾸리해”

설탕도 넣고

“엄마 좀 더 넣자, 달콤하게”

고춧가루 넣을 땐

“그만! 그만”


적당히 양념을 넣어

뽀얀 쪽파에 빨간 옷을 입히기 시작하면

윤기가 흐르는 고운 자태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녀석들

쪽파를 버무리는 건지

팔뚝을 버무리는 건지 모르겠다.


팔꿈치에도, 콧잔등에도, 허벅지에도

두 아이가 빨간 점박이가 되어 서로를 보며 히죽댄다.


어느새 버무려진 제철 쪽파김치가 슬슬 식욕을 돋우는 냄새를 풍기자

두 아이 눈이 초롱해졌다.


“간좀 봐줄래?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작은 입들을 쩍 벌려 내 앞에 들이댔다.


“오! 맛있다 “

고춧가루 범벅의 쌍따봉이 떴다.


김치통에 담을 땐,

머리를 가지런히 해서 넣어 줘야 돼~

산발이 되면, 먹을 때도 아주 그냥 산발이 된다고”


쪽파 산발 한마디에 배꼽 잡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온몸에 칠 갑 팔 갑, 이유식을 버무리던 너는
이제 나와 함께 쪽파김치를 버무린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을, 세월을 버무리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