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트라우마, 3년 전쟁의 끝
타닥! 탁! “앗 뜨거워!”
오랜만의 외식으로 간 삼겹살 집에서.
왜 하필 아이한테.
왜 하필 그때, 기름이 튄 거냐고.
그날 이후, 불판은 아이에게 공포가 되었고
우리는 한동안 고깃집에 갈 수 없었다.
“삼겹살 싫어! 안 가!”
그리운 삼겹살.
젠장. 이렇게까지 절망스러울 수가 있나.
“언제까지 못 먹는 거야! 일단 가자. 엄마 너무 고기 먹고 싶어~ “
오만상을 한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고깃집에 향한 날,
아이는 불판 앞에 몸을 움츠렸다.
그야말로 ‘공포의 삼겹살’이다.
패딩을 목까지 잠그고, 모자까지 뒤집어쓴 채로
테이블 끝에 멀찌감치 앉아,
접시에 덜어주는 다 식은 고기를 먹는다.
나도 참 어지간 하지.
그렇게 싫다는 애를 데리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여름엔 반팔이라 팔에 튄다며 오만 진상마마 납시고,
어떤 날은 옆 테이블까지 침범할 만큼 멀찍이 앉아
직원과 다른 손님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이리 와. 가까이 앉아.”
“싫어! 그러게 왜 온 거야. 무섭다고! ”
“아! 뭐가 무서워. 괜찮아. 안 죽어! “
죽는 게 문제가 아니고! 뜨 겁 다 고!
매번, 이런 식의 실랑이로
즐거운 외식을 놓친 기억이 수두룩하다.
“아오! 별스럽다 별스러워. 너만 싫다는 이유로, 우리가 다 포기해야 하잖아!
식당에서도 민폐고 이게 뭐야!”
가까이할수록 아이는 점점 더 거부감을 느끼며
‘나는 불판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단정 지어 버렸다.
이대로 삼겹살과 이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이의 모습에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불판을 향한 공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혼낸다고 될 일이 아닌데? 이거, 심각한데.’
작전을 짜야했다.
아이 세 살 무렵.
콜라를 달라는 아이에게 충격요법으로
막 딴 콜라를 그대로 줬던 적이 있다.
짜릿한 탄산에 깜짝 놀란 아이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햄버거에 생수를 마신다.
그러니까……
이대로 두면 정말, 평생 삼겹살을 못 구워 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열한 번 찍자는 마음으로
불판 트라우마 극복기에 돌입했다.
“엄마는 우리 딸 성인되면 , 맨날 맛집 데려가 술 마실 거야.
얼른 이 공포를 끝내야, 나중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같이 하지!”
“아! 무슨 소주야! 안 먹어 ”
“안 돼! 그럼 맥주 마실래? “
“맥주도 탄산이잖아! 그냥 소주 마실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내 딸과 함께하는 삼겹살에 소주.
그날을 고대하며,
불판이 아닌 고기는 ‘오케이’였던 딸아이를 데리고,
참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다.
“소는 기름 안 튀어, 그리고 숯불구이는 기름이 밑으로 빠지니까 걱정 마!”
고기 기름이 왜 튀는지 불판의 구조까지 설명하며,
한우 숯불구이 집에 데려가 아이를 꼬셨다.
삼겹살을 위해서라면, 소고기쯤은 투자할 수 있지.
“국물 있는 불고기는 기름이 아예 없잖아!”
서울식 불고기 집을 데려가 끓여 먹는 고기도 여러 번 시도했다.
식탁 위의 가스버너 만으로도 겁을 내던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고기 다 먹고 마시멜로우 구워줄게, 이리 와봐~”
여행을 가서는 바비큐 그릴 앞에 불멍 핑계로 데려오기도 하고
서서히, 불판 위 고기와의 간격을 조금씩 좁혔다.
그렇게
고깃집은 죽어도 가기 싫은 아이와
곧 죽어도 가고 싶은 엄마의
삼겹살 탈환기가
3년 만에 드디어 막을 내렸다.
길고 긴 삼겹살과의 사투 끝에
이제는 불판 제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앉는다.
“고기는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지!”
그간 못 온 것에 대해 한이라도 푸는 듯,
쌈도 싸며, 야무지게 참 잘도 먹는다.
빅토리! 우리는 승리했다! 징글징글하다.
이 죽일 놈의 삼겹살.
너와 삼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10년 같았던 3년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존버는 승리했다.
장하다, 대견하다! 우리는 해 냈다.
자, 다음은 곱창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