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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의 현실

숫자 뒤에 숨겨진 고충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인구주택총조사.

아파트는 90%를 넘겼지만, 연립주택은 54%에 머물러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달랐다.

관리자는 친절했고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목요일에 기계 반납하면 됩니다." 그 말을 믿었다.

금요일로 하루 연기되었을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연립주택 더 조사하세요." 처음의 상냥함은 온데간데없고, 다급함과 압박감만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왔다. 목을 조이는 듯한 느낌. 그분도 위에서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상급 관리자에게 쪼이니까 나에게 그 압박을 그대로 전가하는 것이다.


조사원이 마주하는 현실

정해진 원칙은 3번 방문 후 부재 처리다.

하지만 나는 6번 이상 찾아갔다.

TV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분명한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며칠을 허탕 치며 같은 집을 반복해서 방문했다.

협조해 주실 분들은 이미 다 했다.

남은 건 집에 없거나,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는 가구들뿐이다.

"80% 넘으면 통과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버텼다.

내일이면 기계를 반납하고 이 고된 일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그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무너졌다.


관리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고충

가장 힘든 건 관리자와의 관계다.

처음엔 동료처럼,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응원과 격려가 있었고, "고생하신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하지만 마감이 다가오자 그 관계는 완전히 변했다.

관리자도 피해자인 걸 안다.

그분 역시 위에서 압박받고 있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이해가 상처를 덜어주진 못한다.

내가 아무리 발로 뛰어도, 밤늦게까지 재방문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가구를 어떻게 조사할 수 있단 말인가.


"더 조사하세요."


이 말속에는 "당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내 노력이 평가절하되는 순간이다.

6번 이상 방문한 것도, 규정보다 두 배 이상 더 애쓴 것도, 모두 부족하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숫자가 사람을 지우는 순간

순간 섭섭함이 몰려왔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숨통을 조이는 듯한 압박에 힘이 쭉 빠졌다.

조사원으로서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이것이다.

현장의 현실은 외면당하고, 오직 숫자만이 평가 기준이 된다는 것.

협조하지 않는 주민의 문제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도, 모두 조사원의 '노력 부족'으로 치환된다.

관리자의 태도 변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압박이 단계적으로 전달되는 구조적 문제다.

상급자는 관리자를 쪼이고, 관리자는 조사원을 쪼인다.

그리고 조사원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 문 앞에서 무력감만 느낀다.


내일 다시 그 집들을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다만, 그 최선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가장 힘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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