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고양이가 본 것
해가 기울 때면 그림자들이 길어진다. 나는 그림자 사이를 걸어서 그곳에 간다.
붉은 상자가 서 있다. 녹이 슬었지만 여전히 붉다. 마치 오래된 장난감처럼.
문을 밀고 들어서면 바깥 세상이 조용해진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도 멀어진다. 여기서는 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벽에 매달린 검은 것. 그것은 조용하지만 살아있다. 가끔 작은 불빛이 깜빡인다. 밤하늘의 별처럼.
나는 그 아래 앉는다. 바닥은 차갑지만 오래 앉아있으면 따뜻해진다. 내 체온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첫째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엄마가 나타났다. 어렸을 때의 엄마였다. 젊고 털이 윤기났을 때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머리를 핥아주었다. 따뜻했다.
둘째 날 밤에는 내가 새끼였을 때의 집이 보였다. 골판지 상자였지만 그때는 성 같았다. 형제들과 함께 잠들었던 그 좁은 공간이 그리웠다.
셋째 날 밤부터는 검은 것이 말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전해져 왔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말들.
아프지 않아도 된다. 혼자가 아니야. 기억해도 괜찮아.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밤 나는 그곳에서 꿈을 꾸었다. 좋은 꿈들이었다. 무서운 기억들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무섭지 않았다.
마지막 날, 나는 알았다. 이제 떠날 때라는 것을. 검은 것이 더 이상 불빛을 깜빡이지 않았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뜻이었다.
문을 나서면서 뒤돌아보았다. 붉은 상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음 누군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