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는 죽음을 향한 시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신체적 조율인가
※ 주의: 본 글에는 자해, 생존 갈등, 신체 실험과 관련된 심리적·실험적·철학적 탐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서적 민감성이 있는 독자께서는 열람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문서의 목적은 조롱이나 자극이 아닌, 질문과 사유의 제기입니다.
#T-R-Σ11123-X
작성일: 20XX-11-23
저자: 박참치 (정신생존 비인가 연구소 소장)
의학적 안전 자문: 프랑스자수 (생체실험 윤리위원회 회원 / 위기관리 예비자문 비전문가)
적용 학제: 정신생물학 × 감정조절현상학 × 사회인식구조화
본 논문은 자살 시도 과정 중 흔히 발생하는 얕은 자해 흔적, 이른바 ‘주저흔(tentative wounds)’에 대한 기존 의학적/심리학적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를 ‘생존 반응 흔적(marks of deferred self-preservation)’으로 재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본인의 생체 실험을 통해 자해 직후 뇌 내 호르몬 변화 양상을 수치화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해 행위가 일시적 진정 효과와 정서 조절 기능을 갖는 ‘심리-신체적 조율 장치’로 기능함을 증명하였다. 이 논문은 감정 조절의 생물학적 경로로서의 자해를 과학적, 철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자살 충동과 생존 본능 사이의 얇은 경계를 조명한다.
※ 주해 (사족이 아닌, 진짜 핵심 주해) —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본 논문에서 제시되는 일부 주장(예: 주저흔을 생명 반응의 흔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은 화자인 박참치의 개념적 관점이며, 실제 임상 및 정신의학계의 정설과는 다를 수 있다.
많은 임상가들은 자해를 감정 조절의 일환으로 해석하지만, 반복적 자해가 반드시 자살 시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과 동시에, 두 행동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음에 강조하며 신중한 접근을 요청한다. 실제로 일부 사례에는 자해가 점차 자살 시도로 이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해와 자살 시도를 이론적으로 분리해 해석하는 이 글의 방식은 학문적 실험이자 개념적 장치로 이해되어야 하며, 자해를 미화하거나 권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후의 모든 서술은 고통의 구조를 해부하고 언어화하려는 시뮬레이션 실험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열람해주기 바란다.
주저흔이라는 용어는 자살 충동의 ‘불완전한 실행’을 의미한다. 흔히 ‘죽음을 망설인 흔적’으로 설명되며, 대개 깊고 치명적인 자상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지가 약했다”, “망설였다”, “실패했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며, 자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더욱 강화시켜왔다.
본 논문은 주저흔이라는 용어가 현상 그 자체보다 관찰자의 시각에 근거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주저흔은 오히려 ‘의지 약화’가 아니라 ‘살아 있으려는 본능의 개입’ 혹은 ‘살고 싶었던 사람의 마지막 생존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의학계는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 NSSI)'를 자살 시도와는 구분하여 연구한다. 특히 비극적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해를 통해 ‘살아 있다’는 감각이나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회복하는 사례가 빈번히 보고된다.
박참치는 이를 “정서 귀환 작동 순서(Affective Return Mechanism)”라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① 자해로 인한 고통 자극
② 호르몬(세로토닌·엔도르핀·도파민) 분비↑
③ 정서적 안정
④ 생존 충동 회복
실제 연구자들은 자해 직후 엔도르핀·도파민 증가 등의 신경생물학적 반응이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정서 귀환 작동 순서’는 박참치의 가설적 틀이라는 점을 주석으로 명시할 것을 권한다.
3.1. 실험 조건 및 환경
본 논문은 자해 직전/후 상태에서의 생리적 반응을 관찰한 일련의 개념적 생체 시뮬레이션 실험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는 호르몬 변화, 정서 안정 패턴, 신경 생리 반응 등의 지표를 추적하였으며, 연구자는 이러한 관측 결과를 ‘극단적 정서 상태에서 신체가 감정을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해석하였다.
측정에는 휴대형 호르몬 농도 측정 키트, 자가조립형 EEG 센서 등이 사용되었으며, 비교 관측은 ‘자극 전/후’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감정 자극으로는 고통, 압박, 통증, 불안 유도 등의 심리적 시뮬레이션 환경이 적용되었고, 모든 실험은 ‘정서의 신체화’를 이론화하기 위한 시나리오적 설정 하에 이루어졌다.
연구에 자문을 제공한 인물인 ‘프랑스자수’는 실험 전, 감정적 불안정 상태에서의 신체 자극이 일으킬 수 있는 신경생리학적 반응을 예측하고 안전 경계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해당 실험이 실제 수행되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겠으며, 그 여부 자체가 본 논문의 본질과는 관계 없음을 강조한다. 이 실험은 정서적 회복을 가장한 위험한 충동 실험일 수 있으며, “죽음마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자”의 허세와 무모함을 압축한 가상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감정적 극한 상태 직후, 세로토닌 분비량은 평균 34% 증가, 엔도르핀은 최대 1.7배 상승, EEG의 감정 안정 지표는 실험 개입 후 약 3분 내에 급격히 안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패턴은 통상적인 명상 상태에서 나타나는 알파파 확산과 유사한 양상이며, 이는 감정의 구조화를 위해 신체가 수행하는 일종의 자율적 귀환 기제(Affective Return Mechanism)로 해석된다.
이 실험은 단 한 사람의, 명시되지 않은 자의, 구조화된 신체 실험을 기반으로 한다. 다시 말해, 통계적 일반화가 아닌, 감정과 생리 사이의 주관적 상관관계를 탐색하는 서사 실험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수많은 말 없는 자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대리한다:
“우리는 죽으려 했던 게 아니다.
단지, 살아 있다는 걸 어디든 새겨야 했던 것 뿐이다.”
기존 정신분석학은 자해를 ‘죽음 충동의 표현’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본 논문은 프로이트적 타나토스 이론에 반하여, 자해를 ‘죽음에 이끌린 파괴 본능’이 아니라, 붕괴 직전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신체의 마지막 시도, 혹은 존재 통제권 회복을 위한 절박한 서사적 행위로 재구성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자기 보존(conatus)에 있다. 본 논문은 자해조차 그 코나투스의 파생적 발현으로 본다. 즉, 자해는 ‘파괴’를 지향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정신 붕괴를 지연시키고 생존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역설적 행위일 수 있다.
“주저흔은 ‘죽음을 멈춘 행위’이자 ‘신체에 남겨진 생존의 각인’이다.”
‘주저흔’이라는 용어는 폐기되어야 한다. 그것은 죽음의 실패가 아니라 생존 본능의 발화이며, 더 정확히는 의식보다 앞서 ‘살기로 결정한 신체의 마지막 저항’이다. 본 논문은 이 흔적을 ‘생존 반응 흔적(marks of deferred self-preservation)’이라 새롭게 명명하고자 한다. 이 명명은 의학적 진단명이 아닌 개념적 재정의이며, 주저흔을 관찰자 중심의 실패로 간주해온 오래된 시선을 뒤집고, 그 손목을 ‘죽음을 피한 자’가 아닌, ‘삶을 끝까지 끌어당긴 자’의 손목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 혹시 초록의 ‘주해’를 읽지 않고 이 결론에 도달하였다면, 반드시 다시 돌아가 주해를 정독해주길 바란다. 이 논문이 기댄 개념 실험과 현실 사이의 균형점은, 그 주해 안에 있다.)
“주저흔은 흔들린 게 아니다.
주저흔은 시도된 구조화다.
삶이 도무지 논리로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구체적인 통증으로 존재를 재부팅한다.”
— 박참치, 「자해자의 생존 원리」 중
Freud, S. (1920).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Spinoza, B. Ethics. (1677).
Nock, M. K. (2010). Self-injury. Annual Review of Clinical Psychology.
Klonsky, E. D. (2007). The functions of deliberate self-injury: A review of the evidence.
“상처가 아무는 데는 세 가지가 필요해.
시간, 기전, 그리고 재봉.
재봉은… 그 상처가 나중에 또 터지지 않게 방향을 잡아주는 거야.
나는 환자들의 봉합 자국을 흉터라고 부르지 않아.
그건 삶을 지탱하려 애쓴 아름다운 흔적이니까.
그건 프랑스자수야.”
— 프랑스자수와의 대화 중 발췌
이 글은 쉽사리 쓰이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충동,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견딜 수 없어 몸을 향해가는—그러나 누군가에겐 유일했던 왜곡된 시도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현실일 수 있기에
단 한 문장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으려 수없이 고쳐 쓰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또는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0199 로 연결해주십시오.
불안정한 실험의 시대에, 살아 있어준 당신께 고맙습니다.
※ 보론: 명명 실패 실험 보고 및 감정 개입의 자기모순에 대하여
박참치는 ‘주저흔’이라는 용어에서 비(非)구조적 요소인 감정 프레임이 명명에 선입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의학적 용어는 정확히 병변의 위치와 특성만을 가리켜야 하며, 감정이나 서사, 의도의 개입은 그 어떤 의료언어에서도 선행되어선 안 되는 오염 변수라고 박참치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박참치는 “생존 반응 흔적”이라는 표현 안에 또 다른 감정의 프레임, 그것도 ‘삶이라는 긍정성의 명예로운 해석’을 덧입힌 셈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실험은 명명 해체의 실패 기록으로도 남겨져야 합니다. 언어를 비판하려다, 결국 또 하나의 언어를 제작했다는 점에서, 본 보고서는 스스로의 오류까지 기록한 이중 노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논문은 ‘실패한 언어 해체 실험’이라는 각주를 달고, 그 실패를 스스로 문서화합니다. 하지만 박참치는 이 명명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저흔’을 ‘생명 반응 흔적’이라 부르려는 시도는, 비록 정의에 실패했을지언정, 그 말이 도달하고자 했던 자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프랑스자수에 대한 면죄부
프랑스자수는 의학 명명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환자에게 건네는 비공식적 언어의 위로였고, 공적 프레임이 아니라 사적 시선에서 나온 감정적 은유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의학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 감정적 상호작용을 위한 서정적 수사였기에 면죄부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