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2
거기만 가서도 촌뜨기 나로서는 눈이 번쩍 떨어진다. 고도라서 그런지 울창한 수림이 경주 전체를 둘러싸서 주위 환경도 여간 아름답지가 않다. 오 분 후 기차는 불국사 쪽으로 달렸다. 넓은 평야들이 간혹 보였다. 산과 들이 얼른 번쩍 지나가는데도 부산은 아직 멀었다.
잠시 후 기차는 울산만에 이르렀다. 파도가 출렁이는 동해안 울산만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바다는 넓고 끝이 없다는 말만은 들었어도 사실 그렇게 많은 물이 한 곳에 고여 있을 줄이야. 바다의 끝이 하늘에 닿아 있는가 하면, 하늘이 바닷물 속에 깊숙이 잠겨져 있다. 입이 딱 벌어진다.
물론 객지에 나가 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동해의 해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잠부침 잠부침하는 일엽편주, 구슬프게 들려오는 갈매기 떼들의 울음소리, 밀려가고 밀려오는 하얀 파도, 암석에 부딪혀 깨어지는 그 신비, 얼마간 나는 정신을 잃은 듯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기차는 계속 동해안을 끼고 달린다. 가는 곳마다 펼쳐진 그 해경. 한마디로 장관이다. 그러나 그 객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나만이 그 경치에 정신을 잃고 있다.
기차가 동해안을 끼고 달릴 무렵에는 시간은 정오가 지났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다들 점심 요기를 하고 있었다. 혹 사람들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싸우는 사람 모양 떠들썩하다. 하지만, 촌뜨기 나는 배가 고픈 것도 잊은 채 구경에만 정신을 쏟았다.
얼마 후 기차는 수영, 해운대를 지나 부산항 초량역에 이르렀다. 초량역은 종점역에서 한 정거장 못 가서 있는 역이다. 그리고 초량역은 내가 찾아가는 바로 그 역이기도 하다. 기차가 홈에 닿는 즉시 나는 곧장 하차하여 역사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빈차처럼 보이던 그 하행 열차에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그 초량역 긴 홈에는 사람으로 꽉 덮혀져 있는 듯싶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대합실로 빠져나왔다.
[일제 강점기의 초량역]
대합실 안 역시도 많은 승객들이 와글와글 했다. 촌뜨기 내 생각에는 조선 사람들이 다 거기에 모인 것 같았다. 왠 놈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입이 딱 벌어졌다. 농촌의 시장사람들 보다가도 더 많다. 아니 삼 배도 넘는 듯싶다. 종착역이 아닌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다니 과연 부산항이 크기는 크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스피커의 소리에 더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역전광장으로 나갔다. 역전광장은 그다지 넓지가 않다. 그러나, 그 위가 약간 높은 탓으로 여러 곳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부산항 시가지는 참으로 복잡하다. 차도 가운데에 전차길이 놓여 있고, 차도 밖에는 인도가 뻗어져 있어 보기만 하여도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하였다.
영천, 경주, 울산을 보고 크다고 입 벌렸더니만 그것은 부산에 비유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집들도 이층 삼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자동차들의 행열들과 왈그락 덜그럭 하고 요란스럽게 달리는 전차들,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노상에 북적거리는 인파들. 그 어느 하나도 예사로 봐 넘길 수가 없다.
뿐만 아니다. 또 하나 괴이한 것은 우리 고향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사람들의 행색이 천층만층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니까 그런지 그렇게 가지각색일 수가 없다. 시장 골목 같은 곳을 바라다보니 별의별 인간들이 다 모여 있다. 많은 인간들이 모여서 사는 곳인지라 농촌과 같이 일치된 행동으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 부산항 거리에는 촌뜨기 내가 보기에도 엉망진창이다. 길거리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죽음을 목전에 두다시피 하고 오가는 행인들에게 한 푼의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들 사람들은 새빌로 양복에 깃또 구두를 신고 술에 만취되어 거리를 활보하는 자들도 있었고, 어떤 여인네는 광주리에 무엇을 담아 이고 밀고 밀리는 인파들 틈에 끼어 목이 터져라 사라고 외쳐대는 이도 있었으며, 호화 주택에 들어앉아 주지육림에 파묻히어 젓가락 장단에 세월을 보내는 그러한 자들도 눈에 띄었다.
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기름투성이 옷을 입고 바쁘다는 듯이 행길에 질주하는 사람들도 있고, 지게를 지고 맥 빠진 사람 모양 발길 가는 데로 따라가는 가련한 인간들도 가끔 보였다. 하루 삼시 세끼 죽을 먹고살아도 우리 농촌 사람들은 그처럼 지저분하게 살지는 않는다. 잠시동안 발길을 멈추고 그러한 광경을 본 나는 세상 삶이 이렇게 불공평하구나 하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