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각자의 집을 찾아가 상대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상견례를 진행하기에 앞서 신랑은 신부의 집을, 신부는 신랑의 집을 방문해 부모님을 뵙고 형제들을 만나며 그 집안의 분위기를 살피고, 가장 중요한 '결혼 허락'을 구한 뒤 상견례 일정을 잡지요.
웨딩플래너로서 예비부부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실장님, 어떤 집을 먼저 찾아가는 게 맞나요?”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현장에서 경험이 많은 웨딩플래너들은 대개 신랑이 신부 집에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리고 허락을 받은 뒤, 신부를 데리고 신랑 집에 가 인사드리는 순서를 권합니다. 보다 현실적인 방식이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 신랑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신랑이든 신부이든,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고민은 하나입니다.
‘내가 과연 이 집안의 가족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이제는 서로의 생활 방식과 문화, 말투, 기질을 알아가야 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뭐든 서두르면 채하기 마련이죠. 결혼 생활 15년 차가 된 지금, 저는 그것을 실감합니다.
처음 시댁에 갔던 날, 그리고 두 번째로 방문했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편의 고향인 논산은 저에게 낯선 도시였고,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저는 마치 낯선 땅 위에 혼자 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시댁을 다녀온 날은 파김치가 되어버리곤 했지요.
지금 돌아보면, 저는 제 방식대로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고아였고, 남편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기에 시댁을 방문하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습니다.
‘혹시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어쩌지?’
‘나의 어떤 행동이,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누가 되진 않을까?’
온갖 상상으로 스스로를 짓눌렀던 저는 결혼 후 10년 가까이 시부모님께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그저 "네, 네" 하며 착한 며느리의 역할에 충실하려 애썼습니다.
결혼 초기에 시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아가, 친부모와 자식 간에도 추억이 쌓여야
가족이 되는 거야.
우리도 그렇지 않겠니?”
그때는 그 말의 진의를 잘 몰랐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께서 어떤 분들이셨는지, 그리고 그분들이 제게 건네시려 했던 사랑의 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가족이 된다는 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긴 시간 동안 함께하며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마주하고, 갈등을 넘고, 대화를 나누고, 진심이 담긴 시간을 축적해 가는 일.
그 모든 과정을 거쳐야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겠지요.
전화 한 통도 처음엔 어려웠습니다.
저희 시부모님은 자주 연락을 요구하거나 간섭하는 분들이 아니셨기에, 오히려 저에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만 키워보셨던 분이라 말투가 다소 직설적이셨고, 저는 그 말들에 마음을 다치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 적이 없었고, 당연히 시어머니도 제 마음을 알 길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씀이 저는 좀 마음이 아팠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시어머니는 절 조용히 다독여주시며 이해해 주셨고, 그날 이후 저희는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친딸처럼 절 아껴주시고, 말씀 하나에도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니 저도 자연스레 더 잘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엔, 제 남편이 있었습니다.
시댁을 다녀온 후, 저도 모르게 서운했던 이야기나 불만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남편은 "듣기 싫어"라며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늘 제 편이 되어 주었고,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힘들었겠네. 그럼 당분간 논산엔 가지 말자.”
언제나 저를 우선으로 생각해 주었기에, 저 또한 남편에게 더 마음을 열 수 있었고, 스스로도 시댁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남편은 한결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나에게는 네가 우선이야. 네가 마음 불편한 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언제든지 네 속마음, 다 말해줘.”
그 말들이 저를 지탱해 주었고, 저는 어느 순간부터 시댁에 대한 서운함이 생기면 그걸 곧장 남편에게 말하기보다는 제 안에서 한 번 더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잘못은 없었을까?’
‘나는 과연 시어른들께 진심을 다했을까?’
그렇게 한 발자국 물러나 되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결국, ‘가족이 된다’는 건 단순히 법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깊은 스며듦의 과정입니다.
나 혼자만의 감정뿐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둘 사이에 오가는 진심 어린 대화가 쌓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신뢰가 싹틀 때,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결혼이라는 긴 서사시 안에는 정말 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두 사람만의 일로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양가 부모님이나 형제 문제로 다투기도 하지요.
그럴 때마다 ‘내 입장만 옳다’는 식의 대화는 결국 싸움의 언어가 되고 맙니다.
결혼을 통해 한 편이 되어주기로 한 우리는, 어느 순간엔 양가 가족보다도 먼저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중심에 ‘우리’가 존재해야,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나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상대도 충분히 아플 수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조금 더 지혜롭고 단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며, 오랜 시간을 함께 걸어가며,
두 사람만의 추억을 하나씩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정말로
상대의 가족도 나의 가족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 된다는 건, 같은 성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아요.
서로를 이해하려는 긴 시간, 끝없는 대화, 때론 용기를 낸 고백과 사려 깊은 침묵이
한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우리’로 물들이죠.
저도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어요.
하지만 그 모든 관계의 시작에는,
‘우선 순위가 나였던 한 사람’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가족이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마음의 경계인지도 몰라요.
서로가 서로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기를—
이 이야기가 당신의 관계에도, 따뜻한 힘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