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혼자였던 시간이 더 소중했던 이유

by 유다람

결혼한 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바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나는 문득 20대의 ‘혼자였던 나’를 자주 떠올린다.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기보다,

그때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곱씹어보는 것이다. 가끔은 습작 노트에, 나의 변화를 기록해 두기도 한다. 외롭지만 자유로웠고, 불안했지만 열려 있던 그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당시의 나는 참 철없었다.

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밤이면 친구들과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일상이 반복됐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그 수다 속에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보단 막연한 기대가 더 많았다.

지금의 20대들이 훨씬 성숙하고 단단해 보이는 건 아마 내가 지나온 그 시간들을 너무 무방비하게 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그만두고 나서, 직업을 정하는 것도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웨딩플래너가 되기 전까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서빙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그저 버텼다.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는 식으로, 시간은 흘렀고 나는 아무 계획 없이 그저 살아냈다. 20대 중반 즈음, ‘나는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계발엔 무심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후회도 많다.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언어라도 배워올 걸, 술 마시는 데 쓴 돈을 저축해 둘 걸—그런 아쉬움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도 ‘혼자였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니, 혼자라는 건 상태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육아 중에도 마음만 먹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고, 그 시간이야말로 나를 되돌리고 성장시키는 귀한 기회였다.


첫째 아이를 낳고는 일에 매달렸다.

아이만 바라보는 생활은 내 안의 우울을 키워갔다.

오로지 엄마로만 존재하는 삶은 너무 숨이 막혔고, 나는 매일 도망치고 싶었다.

반면, 일할 때는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둘째를 낳은 뒤에도 일터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거대한 벽은 내 복귀를 가로막았고, 나는 그제야 또다시 혼자의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시기는 말 그대로 공허했다.

가까운 지인의 비보를 들은 뒤, 삶에 대한 회의감은 더욱 짙어졌고,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암담한 내일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문득 ‘그래도 나는 살아 있고,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 무언가를 시작하자고.

아이들을 재우고 시작한 건 자격증 공부였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든 못 따든,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고 클래식을 듣고, 영어 공부를 하고, 리사이틀을 찾아다니며 나만의 취향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으니 욕심도 생겼다.

운전이 무서워 면허증만 들고 다녔던 내가,

드디어 자차로 도로 위를 달리게 된 것도 그때의 작은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혼자였던 시간’이었다.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보며 ‘진짜 나’에 대해 고민했던 그 시간은, 내가 다시 용기를 내는 근원이 되었다. 아이가 아파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른의 첫 걸음은 바로 ‘내 시간을 회복하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하려고 애쓰지만 정작 자신과 함께 보내는 시간엔 서툴다.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미완성인 나를 다듬고 치유하며,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준비하는 가장 본질적인 과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남의 시선으로 완성된 삶보다, 나만이 아는 필모그래피를 쓰고 싶다.


배움은 완성의 도구가 아니라 치유의 언어이고,

용기는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조용한 하루의 다짐에서 시작된다.

지금 당신 곁에도 그 시간이 있다면, 결코 흘려보내지 말기를. 결과가 없어도 괜찮다. 다만, 나를 위해 살아냈다는 기억 하나면 충분하니까.


작가의 말


혼자였던 시간은,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는 외롭고 막막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요한 다짐이, 결국 저를 조금씩 움직이게 했고요.


이 글이 지금 혼자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계절을 지나고 있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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