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은 흔히 사랑의 시작이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작을 너무도 좋아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이 두근거리고,
괜히 하루 종일 들뜨는 그런 감정.
설렘은 그 자체로 예쁘고, 단어로도 아름답다.
입에 담으면 말끝이 살짝 올라가고,
마음은 마치 봄 햇살처럼 살랑인다.
그래서일까.
연애든, 결혼이든, 설렘을 중심에 두는 사람들이 많다.
“설레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
“결혼할 사람을 보면 가슴이 쿵 내려앉아야지.”
그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결혼을 해보고, 함께 살아보고,
또 여러 부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꼈다.
정작 결혼을 오래 지탱하는 건, 설렘이 아니었다.
설렘은 사랑의 문을 여는 감정이라면,
그 문을 닫지 않고 지켜주는 건
‘신뢰’, ‘편안함’, ‘존중’, ‘안정감’, 그리고 ‘다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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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뢰 – 시간 위에 쌓이는 믿음
신뢰는, 단숨에 생기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반복되고,
그 일관성이 경험으로 확인될 때 조금씩 쌓인다.
사랑은 때로 기대를 품게 하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신뢰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래도 이 사람은 내 편일 거야’라고
조용히 마음을 붙들어준다.
신뢰는,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도 남아
사랑을 지탱해주는 가장 단단한 바닥이다.
2. 편안함 –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감정
편안함은, 그 사람 옆에 있을 때
굳이 이유 없이 마음이 놓이는 감정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침묵이 오히려 익숙하고 따뜻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 편안함은 ‘습관’과는 다르다.
습관은 그냥 익숙해지는 것이고,
편안함은 그 익숙함 속에서도 여전히 마음이 살아 있는 상태다.
사람은 결국,
가장 편안한 사람 곁에 오래 머물게 된다.
그 편안함이, 때론 설렘보다 훨씬 오래간다.
3. 존중 – 나와 다른 ‘너’를 사랑하는 방식
존중은,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다.
사랑은 때로 상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하지만 존중은, 상대가 가진 세계를 인정하고,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이해하려는 태도다.
결혼을 하면 더 자주 부딪힌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가치들이
상대에게는 전혀 낯설고 불편한 것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걸음을 맞추는 것.
존중은,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걷게 만드는 유일한 감정이다.
4. 안정감 – “그래도 이 사람만큼은 나를 믿어”
세상은 자주 흔들린다.
삶은 늘 뜻대로 되지 않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쌓여간다.
그럴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말을 온전히 들어주고,
내가 무너져도 함께 주저앉아줄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생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다.
안정감은 단지 평온한 기분이 아니다.
그건 삶을 살아갈 이유이자,
모든 혼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을 견딜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이미 충분히 크고 단단한 것이다.
5. 다정함 – 사라지지 않고 남는 온기
다정함은 말보다 손에 있다.
한 마디보다, 따뜻한 눈빛 하나,
힘든 날 건네는 짧은 한숨,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는 그 따뜻한 순간.
처음만 반짝이고 끝나는 사랑은 많다.
하지만 끝까지 다정한 사랑은 많지 않다.
다정함은 오래된 사랑의 기둥이고,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작은 기적이다.
무너지는 날엔 안아주는 다정함,
슬픈 날엔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다정함,
우리는 그 다정함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다시 삶을 피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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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은 봄꽃 같다.
빠르게 피고, 빠르게 진다.
하지만 오래된 관계는 다르다.
3년보단 5년이, 5년보단 10년이,
10년보다는 20년이 더 깊고 단단하다.
시간이 쌓일수록 서로를 보는 눈은 부드러워지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오래된 온기가 배어난다.
결혼은 결국, 숙성의 시간이다.
익지 않은 관계는 쉽게 흔들리고,
너무 빨리 끓어오른 사랑은 금세 식는다.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다.
급하지 말자고.
빨리 무르익지 않아도 괜찮다고.
설렘이 없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진짜 사랑은,
설렘보다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오래 머무는 감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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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끔
설레는 사랑을 동경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삶 속에서,
더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준 감정들은
설렘보다 더 묵직하고, 조용하고, 따뜻한 것들이었다.
신뢰, 편안함, 존중, 안정감, 다정함.
그 다섯 가지 감정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고,
오늘도 이 관계를 선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설렘 없이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그날,
그 사랑은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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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 결혼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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