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결혼을 하기 전에는 한두 번쯤,
사랑에 빠져봅니다.
물론 첫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 테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지요.
저의 첫 연애는 제법 긴 시간이었습니다.
일곱 살이나 많은 오빠였는데,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속쌍꺼풀이 참 예뻤습니다.
그 눈을 마주보다 보면 괜스레 마음이 깊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지요.
그 사람은 참 다정하고 인자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무심히 “저거 예쁘네”, “바다 가고 싶다”라고
말하면,
그 말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하나하나 기억했다가 이루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그가 마법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랑이 제 인생의 전부라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우리는 3년의 시간을 함께했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던 친구이자 동생 같은 존재와 그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날의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저는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그저 창밖을 보며 수없이 울었습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어볼까?’,
‘아니다, 이제는 끝내야겠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소용돌이쳤고,
아마도 열 시간 넘게, 도시 곳곳을 떠돌며 울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저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이별이라는 건 그렇게 사람을 무너뜨리고, 또 무섭게 만들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기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연애를 시작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생각이 나더라고요.
밝게 웃던 얼굴,
추운 날 제 목에 목도리를 감아주던 따뜻한 손길,
그런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저를 다시금
움직이게 했습니다.
처음엔 ‘이건 말도 안 되는 감정이야’라고
애써 외면했지만,
마음이 가는 건 참 묘한 일이지요.
연하와 연상의 커플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기에
저 스스로에게 더 많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 사람을 좋아해도 괜찮을까?
이 사랑이 진짜일까?
그런데요, 정말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2살이었던 그는, 만난 지 1년 만에 고향으로 가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고,
결국 결혼 허락을 받아왔습니다.
아무런 재산도 없던 어린 남자였지만,
그 추진력과 성실함, 따뜻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결혼할 만한 사람이라 느껴졌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한 통의 전화면 달려오던 사람.
그 사람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 1년 6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두 딸의 부모로, 15년째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은 쉐프로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노력의 깊이는 제가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저의 남편이자, 인생의 스승이기도 하고, 때로는 연인처럼 설레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늘 긍정적이고, 새로운 일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
평화주의자라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따뜻한 리더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남을 험담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어이없는 유머로 저희 가족을 웃게 만드는 유쾌한 아빠이자,
푸릇푸릇한 풀잎 같은 싱그러운 남편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죽을 것 같았던 이별이, 제게는 천만다행이었다고요.
돌이켜보면 조상님이 저를 도와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 3년의 연애는, 지금에 와서는 사람에 대한 깊은 배움을 남긴 시간일 뿐입니다.
이별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또다시 사랑이 찾아올 수 있을까?
그건 너무 성급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별은 우리 마음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놓습니다.
하지만 그 웅덩이 위로는 언젠가 다시 비가 오고,
사람들이 지나가며 흙을 튀기고, 결국은 덮여지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이지요.
이별이란, 어쩌면 새로운 길을 향한 조용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 상처가 며칠이고, 몇 달이고 아프겠지만
결국엔 나를 위한 더 좋은 사랑이 찾아올 거라는 것을,
그 믿음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일은 누구나 비슷합니다.
결국, 나 자신을 어떻게 다듬고 가꾸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이별을 했다고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금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지금,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제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마른 땅을 적셔주는 단비처럼요.
작가의 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아픔이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마치 지나온 터널 끝에 작은 불빛을 발견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모두, 사랑 앞에서 서툴고 아픕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 덕분에
더 단단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줄 알았던 시간 뒤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그런 반짝이는 순간이 조용히 도착하길 바라며
이 이야기를 꺼내어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마음 어딘가에 잔잔한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천천히, 오래도록 함께 나눌 수 있는 글을
계속 써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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