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시댁과의 거리, 마음의 거리

10년 만에 넘은 문턱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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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5년 차.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이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깨달았다. 결혼 생활은 동화 속 '해피 엔딩' 이후의 정적(靜寂)이 아니라, 매일매일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요란하고도 치열한 현실이라는 것을.

나와 남편은 그야말로 '물과 기름' 같았다. 자라온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성격조차 정반대인 두 사람이 한집에 산다는 것,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모험이자 때로는 전쟁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리다. 어쩔 땐 듬직한 오빠 같다가도, 어쩔 땐 한없이 철없는 아이처럼 구는 그를 보며, 우리는 숱한 역경을 넘어왔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낸 우리의 노력이 가상하다 못해 눈물겨울 지경이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다름보다 더 넘기 힘든 산이 있었다. 바로 '시댁'이라는 거대한 산이었다.


1. 몸이 먼저 거부했던 그곳, '시댁 몸살'의 정체


솔직히 고백하건대, 결혼 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시댁이 불편했다. 아니, '불편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머리로는 '가족'이라 생각하려 했지만, 몸은 정직했다. 시댁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체기가 돌았고, 잠자리는 가시방석 같아 밤새 뒤척이기 일쑤였다. 다녀오기만 하면 마치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며칠을 앓아누웠다. 소위 말하는 '시댁 몸살'이었다. 그것은 과도한 노동 때문이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진 내 마음의 긴장 줄이 끊어질 듯했기 때문일 것이다.

퉁명스러운 시어머니의 말투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때마다 나는 시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하거나 오해를 풀려 하기보다,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바로 남편을 붙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어머님은 왜 말씀을 그렇게 하셔?"

"나 진짜 너무 힘들어."

엄밀히 말해 남편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내 불편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남편을 이용하고 있었다.


2. 군중 속의 고독, 이방인이 된 며느리


감정의 골이 가장 깊어졌던 건 첫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산후우울증이 겹친 예민한 시기, 시댁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즐거워하는 그 거실 한구석에서, 나는 혼자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나의 고립감은 깊어졌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나만 섞이지 못하는 기름 방울 같은 존재.

그 순간, 사무치게 친정엄마가 보고 싶었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 보듬어줄 내 편이 그리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그래, 어차피 남이야. 예의만 지키고 선을 긋고 살자. 그게 서로에게 편해.'

나는 그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라 믿으며, 시댁과의 심리적 거리를 지구 반대편만큼이나 멀찍이 벌려놓았다.


3. 10년 만의 자각: 등잔 밑의 희생을 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게 되었다. 세상모르고 자는 그 얼굴을 보는데, 문득 지난 1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이 남자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내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고부 갈등으로 내가 날카로워져 있을 때도, 시댁 문제로 억지를 부릴 때도, 그는 당황할지언정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묵묵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의 편'이었다.

그는 시댁과 나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나 대신 날아오는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연애 시절부터 치면 무려 12년.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원망도 꾸짖음도 없이 그저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피해자고 너는 가해자의 아들'이라는 오만한 프레임에 갇혀, 정작 남편이 홀로 감당해 온 그 거대한 희생과 사랑을 나는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4. 대나무 숲의 기억,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


나의 반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왜 시어머니와 단 한 번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시부모님을 '어른'으로서 얼마나 존중했는가? 내 상처만 들여다보느라, 혹시 내가 그분들에게 드린 상처는 외면하지 않았는가?

질문이 깊어지자,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그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15년 전, 결혼 승낙을 받으러 처음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

당시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상태였다.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자면, 나는 '부모 없는 며느리'였다. 위축되고 겁이 났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달랐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 이유조차 묻지 않으셨다. 그 어떤 조건도, 계산도 없이, 그저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신랑의 손을 잡고 시댁 뒤편의 대나무 숲을 건너 언덕을 오르던 그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렸을 적 개구쟁이였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었다. 그 평화롭고 따뜻했던 시작을,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이다.

결혼할 때 내 나이 스물 여덟. 나이만 먹었지,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철없는 아이였다.


그런 나를 10년 넘게 기다려주신 건 바로 시부모님이었다.

내가 "시댁만 오면 아프다"며 퉁명스럽게 누워 있을 때, 밤잠을 설치며 걱정해 주신 분들. 작은 것 하나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

그분들은 나를 밀어낸 적이 없었다.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내 닫힌 마음과 편견이었다.


5. 거리를 좁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커피 한 잔의 용기'


13년간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수많은 신부들에게 "시댁과는 적당한 거리가 좋아요"라고 조언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정정하고 싶다. 물리적 거리는 둘 수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좁힐수록 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시댁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비싼 선물이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

"어머님, 사실 그때 제 마음이 조금 아팠어요."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

"아버님, 그때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라고 진심을 전하는 것.

물론, 쉽지 않다. 굳어버린 10년의 세월을 깨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어색함에 입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딱 한 번. 그 한 번의 용기가 어렵지, 그 물꼬를 트고 나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제 나는 시어머니께 시시콜콜한 전화를 건다. 시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 더 이상 숙제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어쩔 땐 너무 편해서, 돌아가신 내 부모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마무리하며]


결혼 15년 차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남편이라는 든든한 동반자의 재발견, 그리고 '시댁'을 '나의 또 다른 부모님'으로 받아들이게 된 나의 성장이다.

혹시 지금 시댁과의 갈등으로, 혹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상대방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마라.

내가 먼저 색안경을 벗고, 닫힌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보라.

그 문틈 사이로, 당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의 '기다림'과 '사랑'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당신의 결혼 생활은 전쟁터에서 안식처로 바뀌게 될 것이다.

마치, 내가 10년 만에 다시 찾은 그 대나무 숲의 평온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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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다는 건,

단순히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용기 있는 모험입니다.

처음엔 누구나 서툴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습니다.

저 역시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이방인'을 자처했으니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 곁에는 묵묵히 비를 막아주는 남편이 있고,

어쩌면 당신보다 더 조심스럽게

당신이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실 시부모님이 계십니다.

'시댁'이라는 단어에 갇혀

소중한 '내 편'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용기 내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10년의 얼음을 녹이고

당신의 결혼 생활을 봄날로 이끌어줄 열쇠가 될 것입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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