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처음 맞는 명절의 긴장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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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난 해에 처음으로 시댁에서 맞는 추석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에 나는 운전을 할 줄 몰랐고, 서울에 신혼집이 있는 우리는 차가 있어도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자차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늘 지방에 가야 할 때는 렌트를 했다. 오히려 그것이 유지비가 더 절약되었기 때문이다. 시댁에 갈 때면 렌트를 했고, 결혼 후 처음 맞는 추석에도 렌트를 했고, 난 운전을 못하니 신랑이 운전을 하고 갔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아주버님, 도련님만 오시는 게 아니었다. 논산 연무대에 사시는 시어머니의 형제분들도 들리시고, 시아버지의 형제분들도 오셔서 주무시고 가셨다. 그야말로 '큰 집'의 명절 풍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것만 하루 종일이라 너무 피곤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13년간 웨딩플래너로 일했다. 결혼이라는 '준비' 과정에 그 누구보다 전문가였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실전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쉬는데도 불구하고, 시댁에 '점수'를 따기 위해 웬만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시댁에 가고 싶어 했다. 내가 상담했던 수많은 예비 신부들이 "시댁에 잘 보이고 싶다"며 걱정하던 그 모습을, 나 역시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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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은 늘 말투가 퉁명스러워서 가끔 나는 오해를 하곤 했다. 가뜩이나 말투에 대해 엄청 예민한 나는 퉁명스러운 시어머니의 말투가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어떠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늘 나를 “공주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행복하기도 했고, 나의 아빠에게도 듣지 못했던 공주님이라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시댁을 더 자주 들렀던 것 같다.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몇십 년을 따로 산 우리가 한순간에 가족이 된다는 것은 처음에는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 어렵다는 이야기다.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다른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간과 추억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서로가 성격도 전혀 모르고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만난 사람들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신랑을 보면 남의 집에 방문을 할 때 그렇게 선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빈손으로 가는 거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무조건 남의 집에 방문을 할 때는 비싼 걸로 들고 가야 한다며 가르쳤다. 선물 가격으로 사람이 빈정 상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아빠는 친척 오빠들에게도 만나면 당시에 10만 원씩 주곤 하였다. (90년대에 10만 원이면 굉장히 큰돈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란 나는 친하던 친하지 않던 초대를 받거나 혹은 내가 초대를 해서도 늘 선물을 주었고, 밥값도 굳이 눈치 보면서 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신랑은 굉장히 절약정신도 투철하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섣불리 이해해주지 않아서 여러 번 부딪히기도 했다. 이건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름'의 문제였다.


처음 맞는 명절에는 참 특이했다. 큰 집의 딸인 형님은 누워서 놀고 있고, 나는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었다. 신랑도 누워서 놀고 있었다. 운전을 해야 하니 시어머니가 신랑은 쉬라고 한 것이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6월에 결혼을 하고 몇 개월 만에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고, 솔직히 말해 내가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러고도 몇 해를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보낼 수가 없었다. 신랑에게 조근조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운전을 배워버렸다.

겁이 죽도록 많은 나는 용기를 내서 운전을 배웠다. 운전해야 하는 사람이 쉬어야 한다면, 나도 운전해서 나도 쉴 권리를 갖겠다고 다짐했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운전을 하고 시댁까지 갈 수 있는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단순한 운전이 아니라, 나 스스로 관계의 주도권을 찾아오는 행위였다.

명절은 참 아이러니하다. 가서 난 설거지만 하고 왔을 뿐인데도, 갔다 오면 온몸이 아프고 몸살이 걸린 것처럼 며칠이 아프다.

그 이유를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았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바로 나의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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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긴장하고 있었다. 명절 몸살의 진짜 원인은 '노동'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몸살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착한 며느리', '싹싹한 새아가'라는 역할을 연기하느라 쓴 '감정 에너지'의 고갈 신호였다.

늘 실수할까 싶어서 이렇게 저렇게 본 눈치들, 퉁명스러운 말투에 담긴 뜻을 혼자 100가지로 해석하며 상처받았던 마음들, '공주님'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 이 모든 것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부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주버님이나 도련님이 나를 '눈치 준' 것도 아닌데, 나 혼자만 그렇게 '며느리 역할극'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10년 뒤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내 책임이고, 나의 생각이고,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내 편안한 대로 하면 되고, 시부모님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커피 한잔 마시며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몇십 년을 따로 산 사람들이다. 단기간에 우리가 한 번에 가족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의견을 늘 뒤로 미룬다는 것도 나의 정신 건강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이제 나는 그저 편안하게 보낸다. 명절이 다가와도 그닥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 생활 10년 차에, 그리고 웨딩플래너 13년 차에 얻은 가장 중요한 결혼 생활의 룰을 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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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은, 효도는 각자 알아서 '셀프'로 하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기적이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것이야말로 결혼한 두 사람이 각자의 부모님과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유일한 방법이다.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효도' 문제로 파혼 직전까지 가는 커플들을 수없이 봤다. "너는 왜 우리 엄마한테 나만큼 못해?" 이 말처럼 폭력적인 말은 없다.

시댁에는 신랑이, 친정에는 내가 알아서 서로 나눠서 하면 된다. 내가 나의 부모님께 효도를 하면 되지,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도 큰 소리쳐서도 안되는 일이다. 내가 내 부모님께 용돈 10만 원을 드리는 것과, 남편이 내 부모님께 10만 원을 드리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 '내 자식'이 주는 10만 원은 고마움이지만, '사위/며느리'가 주는 10만 원에는 알 수 없는 기대와 부담감이 섞이기 쉽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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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많은 예비부부들의 명절 풍경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방문해야 하는 눈치가 보였다면, 이제는 "저희는 이번 명절에 여행 가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커플들이 늘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면 완전한 '우리만의 가정'을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 때 아이를 위해서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가족끼리만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것도 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굳이 명절 당일에 시댁에, 친정에 얽매여 갈 필요도 없다. 명절 이전이나 명절 이후에 찾아뵙는 것도 난 예의가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딱 정해진 법도 없지만, 특히 결혼 생활에는 우리 둘의 유두리(유연함)가 필요하다.

처음 다가오는 명절을 두려워하지 마라. 한번 겪어보고, 나는 내 방식대로 해답을 찾으면 된다. 어렵지 않다. 결혼 생활을 1년만 하고 말 것은 아니지 않은가?


13년간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수백 쌍의 커플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결혼 '준비'는 완벽할 수 있어도, 결혼 '생활'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웨딩드레스처럼 '착한 며느리', '완벽한 아내'라는 역할을 억지로 연기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수많은 명절과 날들을 함께 겪어내며,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내 편'과 함께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진짜 우리'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반짝이는 결혼 준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할 '결혼 생활'의 본질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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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처음 맞았던 명절의 그 차가운 공기와 '나만 겉도는 것 같은' 낯선 감각을 기억하시나요?

13년간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수많은 신부님들을 보냈지만, 화려한 '결혼 준비'가 끝나고 닥쳐오는 '결혼 생활'이라는 실전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저에게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공주님'이라는 다정한 호칭에 잠시 행복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착한 며느리'라는 보이지 않는 역할극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지는 않았는지.

명절이 끝나고 앓아누웠던 그 지독한 몸살의 원인이, 닦아낸 그릇의 개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폈던 '눈치'와 '긴장감'이었다는 것을 저는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부디 저처럼 10년을 앓고 나서야 깨닫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효도는 셀프'라는 원칙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두 사람의 가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어막'입니다.

결혼 생활은 1년짜리 단막극이 아닙니다. 정해진 답안지를 따르려 애쓰기보다, 두 분만의 유연한 해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입니다.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하고, 때로는 이방인처럼 느껴져도 괜찮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내며, 우리는 비로소 '진짜 우리'가 되어가니까요.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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