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결혼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다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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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는 평생의 수업이다.

그 언어는 문법도 다르고, 리듬도 다르며, 해석도 다르다.

서로의 단어를 알아듣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오해와 고요,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나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감정이 깊고 복잡할수록 말은 더 천천히 굳어진다.

누군가는 이걸 냉정 함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너무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닫는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수십 번의 대화를 하고, 수백 번의 감정을 되새기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단 한 줄이다. 반면, 내 남편은 그와 정반대의 언어를 쓴다. 감정이 생기면 바로 말로 옮기고, 오해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ENFJ다. 상황을 두고 기다리는 걸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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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혼 15년 차다. 그 세월 동안 수없이 부딪히며, 다투며, 서로의 언어를 해석해 왔다.

아직도 완벽히 통역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문장을 알아듣는다.

연애 때 그는 늘 말했다. “뭐든 바로 이야기하자. 쌓아두지 말고.”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사람, 진심을 바로 꺼내는 사람.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그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의 ‘바로 이야기하자’는 나의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줘’와 늘 엇갈렸다.

그는 즉각적인 대화를 원했지만, 나는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하는 게 더 두려웠다.

그는 “지금 말하자”라고 했고, 나는 “나중에 말할게”라고 했다.

그 짧은 차이가 결국 싸움의 불씨가 되곤 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내 안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그는 그 침묵을 무시라고 느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내가 혼자 떠드는 거 같잖아.”

그 말이 내 마음을 찔렀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나는 단지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에게 외면으로 보였다.

그는 내 침묵을 “이 관계를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그의 재촉을 “나를 몰아붙이는 폭풍”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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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다르게 사랑했다.

나는 고요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사랑했고,

그는 대화 속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사랑했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는 걸 알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몇 년은 정말 자주 싸웠다.

나는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데, 그는 당장 풀고 싶어 했다.

나는 그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고 싶었지만, 그는 그걸 더 큰 문제로 만들었다.

“왜 나를 밀어내? 이렇게 싸우면 바로 풀면 되잖아.”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는 더 깊이 잠겨 들었다.

결국 나는 울며 말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어. 나한테 시간을 좀 줘.”

그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 싸움의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그는 여전히 빠르지만, 이제는 나를 기다릴 줄 안다.

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이제는 그의 재촉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거란 걸 안다.

그는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워했고, 나는 그 두려움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까 봐 조심스러웠다.

우리가 배운 건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기다림의 리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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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결국 ‘속도의 합의’다.

한 사람은 빨리 풀리고, 한 사람은 늦게 식는다.

한 사람은 지금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내일이 되어야 말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은,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는 일이다.

한쪽이 조금 멈추고, 한쪽이 조금 기다릴 때,

그 틈새에서 관계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신랑은 여전히 화를 빨리 낸다. 욱하는 성격은 15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본다.

그의 화는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걱정해서 터지는 감정이었다.

그는 늘 나를 지키고 싶어 했고, 그 마음이 표현되는 방식이 서툴렀던 것뿐이다.

나는 예전 같았으면 그 말투에 상처받았겠지만, 지금은 다르게 들린다.

그의 “왜 말을 안 해?”는 “나는 네가 괜찮은지 걱정돼”라는 뜻이었다.

결혼이란, 결국 이런 식으로 상대의 언어를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이다.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서로의 단어를 조금씩 바꿔 썼다.

그는 내게 “이제 괜찮아?” 대신 “지금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아?”라고 묻는다.

나는 그에게 “지금 말하고 싶지 않아” 대신 “조금만 기다려줘, 곧 이야기할게”라고 답한다.

단어 몇 개가 바뀌었을 뿐인데, 대화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이란 이렇게 언어를 조율하며 함께 자라는 일이다.

연애는 감정의 언어로 시작되지만, 결혼은 인내의 언어로 유지된다.

처음엔 사랑이 모든 걸 덮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해가 사랑을 대신한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때가 많았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면서도 괜찮지 않았고,

그는 “괜찮아?”라고 물으면서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나서야, 우리는 진짜로 서로를 들을 수 있었다.

결혼은 ‘대화’보다 ‘듣기’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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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말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온도를 듣는 일.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

그건 포기나 단절이 아니라, 서로의 숨을 맞추기 위한 여백이다.

우리는 그 여백 안에서 다시 사랑을 배웠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확신한다. 결혼은 싸움의 횟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싸워도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예전에는 싸움이 끝나면 마음이 멀어졌지만, 지금은 싸움이 끝날수록 더 가까워진다.

서로의 언어를 해석할 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결혼의 언어에는 정답이 없다.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표현의 방식은 수천 가지다.

중요한 건 그 안의 ‘진심’이다.

그 진심이 통한다면, 말은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결혼은 결국 서툰 두 사람이 천천히 같은 문장을 완성해 가는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조용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침묵이 무언가를 잃게 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말이 빠르지만, 이제는 내 속도를 맞춰준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해하려 애쓴다.

그 시도가, 그 마음이, 이 관계를 지탱해 준다.

결혼은 처음에는 사랑으로 시작되지만, 지속시키는 건 언어의 온도다.

누군가의 말투, 시선, 기다림 속에 서로의 마음을 읽는 일.

그것이 우리가 15년을 견뎌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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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평생의 공부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인 사람과, 마음보다 말이 먼저인 사람이 만나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중요한 건 언어의 차이를 탓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말이 많다고 해서 가볍지 않고,

말이 없다고 해서 무심하지 않다.

사랑은 표현의 양이 아니라, 이해의 깊이로 완성된다. 결혼 15년을 돌아보며 나는 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결국 서로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말을 고르고, 침묵을 배우고, 기다림을 견디는 과정.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같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된다.


written by Yoodaram

“결혼은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통역하는 일이 아니라,

그 언어를 배우려는 태도를 평생 잃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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