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함께 산다는 것

타협이라는 가장 고등한 사랑의 기술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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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결혼, 그 완벽한 오해의 시작


13년간 웨딩플래너로 일하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는 정말 천생연분이에요"라는 말이었다. 식장에 들어서는 예비부부들은 서로의 닮은 점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식성이 비슷하고, 웃음 코드가 맞고, 여행 스타일이 같다는 이유로 그들은 운명을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커플을 배웅하며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삼키곤 했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은, 어쩌면 결혼이라는 거대한 모험을 감행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달콤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드라마다. 연애가 서로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90분짜리 로맨틱 코미디라면, 결혼은 서로의 바닥과 내면의 그림자까지 모조리 드러내야 하는 50부작 대하 다큐멘터리다. 연애 10년을 했어도 결혼 일주일 만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어지는 게 바로 결혼이다.


그 낭만적인 필터가 벗겨지는 순간, 우리는 당혹스러운 진실과 마주한다. 내 단점은 보이지 않고, 상대방의 단점만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거대하게 다가오는 시기. 결혼 생활의 성패는 바로 이 시기를 어떻게 건너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의 단점을 고쳐서 나에게 맞출 것인가, 아니면 그 단점조차 그 사람의 일부로 인정하고 공존의 기술을 익힐 것인가.


나 역시 그 격랑의 시간을 건너왔다. 나와 내 남편은, 감히 말하건대 '물과 기름'보다 더 섞이기 힘든 정반대의 우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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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지된 호수 같은 여자,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남자


나는 기본적으로 '정적(靜的)'인 사람이다.


성격은 돌다리도 백 번을 두드려보고 건널 만큼 조심스럽고, 물건 하나를 사면 10년, 20년이 지나도 새것처럼 쓴다. 내 휴대전화는 단 한 번도 액정이 깨져본 적이 없다. 집안의 모든 물건이 오와 열을 맞춰 줄 서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먼지 한 톨 없는 정갈한 상태를 유지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나는 바깥세상의 소음보다는 집 안의 고요를 사랑한다. 책을 읽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사부작거리며 집안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휴식이자 충전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쏟는 일은 나에게 노동이나 다름없다.


반면, 나의 남편은 '동적(動的)'인 에너지 그 자체다.


그에게 조심성이란 사전에 없는 단어다. 물건은 쓰라고 있는 것이지 모시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의다. 그가 새 휴대전화를 사면, 나는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의 휴대전화 액정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에게 청소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일뿐, 정리 정돈에는 도무지 취미가 없다. 자신의 몸을 씻고 치장하는 것에는 공을 들이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허물처럼 옷가지와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사람 속에 있어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일을 할 때도 혼자 하기보다는 으쌰으쌰 하며 단합하는 것을 즐기고, 늘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주변은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역동적이다.


고요한 호수 같은 여자와,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남자.

이 두 사람의 결합은 처음부터 예고된 재난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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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협화음의 시절: 잠 못 드는 밤과 유리 멘탈


신혼 초, 나는 매일 밤 고통 속에 잠들었다.


예민한 나는 잠귀가 밝다. 반면 늦게까지 가게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발소리는 내게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조심한다고 했겠지만, 그의 '조심'은 나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랐다. 쿵쿵거리는 발소리,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나는 자다 깨기를 반복했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나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가사 노동의 분담 문제도 전쟁의 불씨였다.


"설거지 좀 해줘"라고 부탁하면, 그는 흔쾌히 알겠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그가 해놓은 설거지를 보면 그릇에 고춧가루가 그대로 붙어 있거나 물기가 흥건했다. 결국 나는 한숨을 쉬며 고무장갑을 다시 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이 생각은 나를 지치게 했다.


정서적인 교감에서도 우리는 엇갈렸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나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깊은 상처를 받곤 했다. 밖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면, 나는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라는 위로를 바랐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둔감한 남편은 내 감정에 공감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려 들었다.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그냥 무시해."


그의 투박한 조언은 나의 '유리 멘탈'에 돌을 던지는 격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는 내가 너무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취향의 차이는 또 어떠한가.


나는 클래식 선율에 마음을 기대는 사람이지만, 남편에게 클래식은 '수면 유도 음악'일뿐이었다. 내가 베토벤과 쇼팽을 이야기할 때, 그는 하품을 참으며 딴청을 피웠다. 종교마저 달랐다. 가톨릭 신자인 나와 개신교 신자인 남편. 신혼 초 우리는 서로의 종교적 방식이 낯설어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나는 신중하게 고민하고 주저하는 사이, 그는 이미 저만큼 앞서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교묘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처받지 않는 법을 알았지만, 나는 사람을 한번 믿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다 뒤통수를 맞고 혼자 끙끙 앓았다.


도무지 맞는 구석이라곤 없는 우리. 15년 전, 많은 이들이 우리의 앞날을 걱정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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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5년의 연금술: 고치려 하지 않고, 인정하기 시작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누구보다 견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이토록 다른 서로를 견뎌내고, 마침내 사랑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중'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타협이었다.


우리는 깨달았다. 30년 넘게 다르게 살아온 상대를 내 입맛대로 고치려 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을. 상대를 바꾸려 하면 싸움이 되지만, 상대를 인정하면 평화가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다.


① 따로 또 같이, 수면의 타협


우리는 과감하게 잠자리를 분리했다. 이것은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체 리듬을 존중하는 생존 전략이었다. 남편은 첫째 아이와 자고, 나는 예민한 둘째 아이와 함께 잤다. 덕분에 나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남편 역시 늦은 귀가에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었다. 주말이면 에너지가 넘치는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집순이인 나는 그 시간 동안 집에서 혼자만의 충전 시간을 갖는다. 아주 가끔은 나도 따라나서지만, 억지로 매번 동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서로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② 취향의 독립 존중


피아노 리사이틀? 이제는 혼자 간다. 클래식을 지루해하는 남편을 억지로 끌고 가서 옆자리에 앉혀놓고 눈치를 보는 것은 서로에게 고문이다. 대신 나는 그 온전한 몰입의 시간을 혼자 즐긴다.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딸들과 함께 가면 될 일이다. 남편 역시 자신의 취미 생활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고유한 영토를 침범하지 않기로 했다.


③ 믿음의 방식, 종교의 평화


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지만, 남편은 독실하지 않은 개신교 신자다. 다행히 그는 종교에 대한 고집이 세지 않았다. 그는 나와 아이들이 성당에 다니는 것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비가 오거나 늦은 시간이면 성당 앞까지 데려다주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응원해 준다. 나 역시 남편에게 성당에 가자고 강요하지 않는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훈련장이 되었다. 남편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종교 활동은 가정의 평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혜롭게 조절한다.


④ 가사 노동의 외주화: 사람 대신 기계


남편에게 설거지를 시키고 다시 내가 하는 악순환을 끊었다. 꼼꼼하지 못한 그에게 청소를 맡기고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그 부분을 '기술'로 해결하기로 했다. 남편은 자신이 몸으로 때우지 못하는 미안함을 '자본'으로 해결해 주었다.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청소기 등 가사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가전제품에 아낌없이 투자해 준 것이다.


"내가 꼼꼼하게 못 도와주니까, 대신 이 기계들이 당신을 도와줄 거야."


그것은 그 나름의 사랑 표현이자 배려였다. 덕분에 나는 집안일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남편은 잔소리에서 해방되었다.


⑤ 그의 세계를 집으로 초대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기꺼이 나의 공간을 열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보다, 차라리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혼 초부터 나는 남편의 친구들이 오면 묵묵히 술상을 차려내고, 때로는 술값까지 계산해 주며 그의 기를 살려주었다.


내성적인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남편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의 친구들과 누나, 동생 하며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나의 작은 희생이 우리 부부의 사회적 울타리를 넓히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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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너지: 반대가 끌리는 이유


정반대의 성격은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완벽한 보완재가 되었다.

나는 남편의 그 무모할 정도의 추진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돌다리를 두드리며 주저할 때, 남편은 내 등을 떠밀며 말했다.

"안 되면 어때? 다시 하면 되지. 일단 저질러 봐!"


그의 그 단순하고도 강력한 응원이 없었다면, 나는 감히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 예민한 나에게 둔감력의 미학을 알려준 사람. 이것이 바로 남편의 보이지 않는 내조였다.

반대로 남편은 나의 꼼꼼함과 신중함에 의지한다. 그가 앞뒤 안 가리고 일을 벌일 때, 나는 뒤에서 디테일을 챙기고 위험 요소를 점검한다. 사람을 너무 믿어 손해를 볼 뻔한 순간마다, 나의 예민한 직감이 그를 구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스포츠카(남편)와 내비게이션(나)의 조합과도 같다. 혼자라면 사고가 나거나 길을 잃었겠지만, 둘이 합쳐지니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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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침의 대화, 그리고 도덕이라는 마지노선


우리의 하루는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가게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은 우리 부부만의 '정상 회담' 시간이다. 사회 이슈부터 역사 이야기, 가게 운영 문제,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한다.


이 시간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관'을 튜닝하는 시간이다. 생각이 다른 부분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같은 부분은 맞장구치며 우리는 서로의 뇌를 동기화시킨다. 그리고 미래를 함께 설계한다.


물론 우리라고 안 싸우는 것은 아니다. 신혼 때는 이틀이 멀다 하고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 서로가 옳다고, 네가 틀렸다고 우겨댔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싸우는 것만큼 어리석고 해로운 교육은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대신 둘이 있을 때만 티격태격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유효기간은 단 몇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내가 눈물이 많아 울어버리면, 마음 약한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며 먼저 "미안하다"라고 손을 내민다. 그러면 나도 기다렸다는 듯 "나도 말을 심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관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15년간 지켜온,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단 하나의 철칙이 있다.


"도덕적인 선은 절대 넘지 말자."


거짓말하지 않기,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법을 어기지 않기. 이 기본적인 도덕성만 공유한다면, 성격 차이나 취향 차이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부모,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장 큰 유산이자 우리 부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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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타협,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항복


결혼 15년 차.


이제 나는 남편의 깨진 휴대전화 액정을 봐도 화가 나지 않는다. '또 깼네' 하며 덤덤하게 수리 센터를 예약한다. 남편 역시 내가 피아노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도 군말 없이 이어플러그를 끼고 낮잠을 청한다.


타협(妥協).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이지만, 결혼 생활에서의 타협은 조금 다른 의미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확장'이다. 내 세계만을 고집하던 좁은 마음을 열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의 세계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


서로의 가치관을 맞추는 일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조립식 가구가 아니다. 그것은 수만 번의 대화와, 수천 번의 싸움과, 수백 번의 화해라는 사포질을 거쳐, 서로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깎아내는 긴 세월의 공예품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나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색깔이 내 삶에 스며드는 것을 허락하는 일.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부부'라는 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둔감하고 시끄러운 내 남편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역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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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지금 배우자와의 성격 차이로 힘들어하고 계신 분들에게.

"우린 너무 안 맞아"라며 한숨 쉬지 마세요.

세상에 꼭 맞는 퍼즐 조각 같은 부부는 없습니다.

모두가 억지로 끼워 맞추고, 깎아내며 맞춰가는 중일뿐입니다.

상대를 고치려 들면 지옥이 열리지만, 상대를 인정하면 그때부터 연민과 사랑이 싹틉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 사람이 가졌음에 감사하세요.

나의 예민함은 그의 둔감함으로 위로받고, 그의 무모함은 나의 신중함으로 보호받습니다.

타협은 패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고등한 사랑의 기술입니다.

오늘 저녁, 달라도 너무 다른 당신의 배우자에게

"달라서 고마워"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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