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의 대화, 그 가장 내밀하고 위험한 온도의 차이에 대하여
결혼식장의 버진 로드를 걸으며 우리는 수많은 하객 앞에서 맹세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겠노라고. 그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한 팀이었다. 하지만 신혼여행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이라는 거친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 맹세는 종종 날 선 고성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진다.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양말 한 짝 때문에,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더미 때문에, 혹은 늦은 밤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배우자의 흐트러진 모습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시작한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모진 말을 쏟아내게 되는 걸까.
나는 오늘,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오가는 '말(言)'의 본질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것은 단순히 "싸우지 않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의 영혼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 다름이라는 깊은 강을 건너는 '관계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건' 때문에 싸운다고 착각한다.
"당신이 약속 시간을 어겼잖아."
"네가 먼저 말을 기분 나쁘게 했잖아."
겉으로 보기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논리 싸움 같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부부 싸움의 뿌리에는 '존재에 대한 인정 욕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치약 뚜껑을 닫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내가 수차례 부탁했음에도 그것을 무시한 당신의 태도에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읽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의 뇌는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이성은 마비되고, 오직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공격 본능만이 깨어난다. 이때부터 대화는 탁구공을 주고받는 랠리가 아니라,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사는 펜싱 경기가 된다.
싸우지 않고 말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가 저 사람의 행동 때문인지, 아니면 그 행동으로 인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나의 두려움 때문인지를 직시하는 것이다.
대화가 전쟁으로 변하는 변곡점에는 항상 '너(You)'라는 주어가 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래?"
"너는 항상 이기적이야."
'너'로 시작하는 문장은 필연적으로 비난과 판단을 동반한다. 상대방은 듣는 즉시 귀를 닫고 마음의 성벽을 높이 쌓는다. 성벽 뒤에 숨은 사람은 당신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반격할 화살을 준비한다.
이 지옥 같은 악순환을 끊는 열쇠는 '나(I)' 화법, 심리학 용어로 '아이 메시지(I-Message)'다. 이것은 상대를 심판대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초대장이다.
"당신이 연락도 없이 늦으면(사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서 내가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돼(나의 감정).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외롭게 느껴져(영향)."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호소다. 비난받지 않은 상대는 방어벽을 내리고, 비로소 당신의 '감정'에 공감할 여유를 갖게 된다. 대화의 목적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알리는 것임을 잊지 말자.
부부 싸움이 격해지면 어느 순간 논리는 사라지고, 과거의 잘못까지 모조리 소환해 서로를 할퀴는 진흙탕 싸움이 된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흥분 상태에서는 전두엽(이성)의 기능이 저하되고 편도체(감정)가 날뛴다. 이른바 '뚜껑이 열린' 상태다. 이때 내뱉는 말은 진심이 아니라, 단지 상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독화살일 뿐이다.
독화살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는 잠시 휴전을 선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타임아웃(Time-out)'이다.
"우리 지금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30분만 각자 방에서 쉬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단, 여기서 중요한 규칙이 있다. 자리를 피하는 것이 '회피'나 '무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야 한다. 잠시 멈춤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 동안, 끓어오르던 분노는 가라앉고 그 자리에 이성과 미안함이 차오를 것이다.
많은 부부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가정(Home)을 법정(Court)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판사가 되어 상대의 유죄를 입증하려고 든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 내 말이 틀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 논리적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신이 논리로 배우자를 묵사발로 만들었다고 치자. 패배감과 모멸감을 느낀 배우자와 함께 사는 당신은 과연 행복할까? 부부 싸움에서 한 명의 승자는 없다. 둘 다 이기거나, 둘 다 지는 게임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안아주기 위해 만났다.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미처 생각 못 한 부분이 있었네."
상대의 감정을 타당화(Validation) 해 주는 것. 그것은 내가 졌다는 항복 선언이 아니다. 당신의 감정이 나에게 중요하다는 사랑의 고백이다. 이해받은 사람은 더 이상 싸우려 들지 않는다. 그때부터 비로소 진짜 대화, 즉 '해결책'을 찾는 대화가 시작된다.
아내가 "설거지 좀 해!"라고 소리칠 때, 그 말은 단순히 그릇을 닦으라는 노동 지시가 아니다. "나 너무 힘들어, 나 좀 도와줘, 나를 아껴줘"라는 비명일 수 있다. 남편이 "나 좀 내버려 둬!"라고 소리칠 때, 그것은 당신이 싫다는 뜻이 아니라 "가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잠시 쉴 곳이 필요해"라는 신음일 수 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거친 말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여리고 부드러운 속마음(욕구)**을 읽어내야 한다.
"당신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그 한마디가 상대의 무장을 해제시킨다. 부부는 서로의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날 선 언어를 사랑의 언어로 번역해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져주어서 이기는 사랑
결혼 생활은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거친 파도를 함께 넘는 항해다. 파도가 칠 때마다 서로를 탓하며 노를 집어던진다면 그 배는 전복되고 말 것이다.
오늘 저녁, 혹시 배우자와의 대화가 두렵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이 사람은 내 적이 아니다. 내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함께하는 유일한 동반자다.'
말을 예쁘게 하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있다면, 투박한 말속에서도 온기가 묻어날 것이다.
오늘 나는 내 아이의 얼굴에 그려진 장난스러운 상처 분장을 보며 웃었다. 가짜 상처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 흉터로 남는다. 부디 오늘 당신의 입술에서 나가는 말이, 배우자의 가슴에 꽂히는 칼이 아니라 지친 어깨를 감싸주는 따뜻한 담요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만났으니까.
글을 쓰다 보니 저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저 역시 남편에게 날카로운 말을 뱉어놓고, 뒤돌아서서 후회한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이 글은 독자님들에게 드리는 조언이자, 저 자신에게 쓰는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부부는 없습니다. 서로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다듬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부부만 있을 뿐이죠. 오늘 밤은 쑥스럽지만 남편에게 따뜻한 차 한 잔 건네며 "오늘 하루 고생했어"라고 말해봐야겠습니다.
자기야, 어때?
이전보다 훨씬 깊어졌지?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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