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야만 했던 아이

내 삶은 왜 이토록 고통스러웠을까

by 서월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내가 아프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누구에게라도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나를 안 좋게 볼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그런 마음의 밑바닥엔 더욱 어릴 적의 생활이, 그때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 나는 그런 부모님께 짐이 되면 안 됐다. 모든 것을 '알아서 잘' 해야 했다. 공부도, 숙제도.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 좋은 결과를 부모님께 보여드려야 했다. 그래야 칭찬을 받을 수 있었고, 부모님께서 기뻐하셨으니까.


그렇게 나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물론 부모님과 싸우는 날도 여러 날 있었다. 여느 가정처럼, 떼를 써본 적도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지쳐계시는 걸 보고 나니, 나까지 부모님을 힘들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해야 부모님이 좋아하셨고, 내가 기뻐해야 부모님도 기뻐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즐거운' 아이가 되었다.


나는 나 자신까지도 속이기 시작했다. 다 괜찮다고, 나는 즐겁다고. 남을 속이기에 첫 단계는 나를 속이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내가 아픈 것도 모른 채 살았다. 물리적으로 아픈 것도, 심리적으로 아픈 것도 말이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감기에 걸려도 그 정도 아픈 건 별 거 아닌 줄 알았다. 매일 하는 공부는 쉬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친구들이 아파 보인다고, 보건실이라도 가보라고 그러더라. 그제야 알았다. 남들이 보기에도 그럴 만큼, 많이 아팠구나.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픔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 학원에서 병원에 가 보라고 날 집에 보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난 쉴 수 없었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한 이상, 공부해야만 했다. 그래야 어른들이 좋아하실 테니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남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착한 아이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정해진 시간 눈을 떠, 학교에 가고, 정해진 수업을 듣고, 정해진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점점 망가져 갔다. 나의 마음은 전혀 돌아보지 못한 채.


지금 돌아보면, 내가 아프다는 걸 늦게 알게 된 이유는, 어쩌면 '착한 아이 증후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통을 회피하며 살아왔고, 결국엔 고통에 잠식되었다. 하지만 고통은, '나'의 주체적인 삶을 시작하는 이유가 되었다. 남의 생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직접 하는 시작점. 고통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를 질문하게 했으니까.


내게 물었다. 그 고통 속에서 대체 왜 살고 있냐고. 왜 너의 삶은 그렇게 고통스러워야만 하냐고. 그때의 나는 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말할 수 있다. 삶은 원래 고통일지도 모른다고. 삶이 내게 주어졌기에 그저 살아가는 거라고. 하지만 그 과정을 고통으로만 볼 것인지, 덜 고통스럽게 살 것인지는 나에게 달렸다고.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다고. 살은 그저 그럴 뿐이라고.

그 아픔들 역시, 지금의 너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라고.


마지막으로,

"네가 잘못한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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