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스펙트럼

우울 안경

by 서월

우울은 주변의 모든 색을 집어삼켜 흑백의 세상으로 만든다. 마치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듯, 온통 검어져 버린다. 색이 사라지니, 시야도, 생각도 좁아진다.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애써도, 생각은 부정적으로만 흘러간다.


몇 번이고 우울에 집어삼켜졌다. 텅 빈 방 안, 내 모습이 그림자처럼 번질 때까지 계속 먹혔다. 빛이 들어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울이 그 방 안조차 검게 물들인 것이다. 소리도, 촉감도, 모두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다. 차라리 우울에 몸을 맡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의 상태, 그 속에 깊숙이 머무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 틈으로 약간의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빛이 내 안의 멈춰버린 무언가를 움직이게 했고, 문 앞으로 나아가 한 발 내디뎠다.


세상은 여전히 흑백이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회색에도 여러 결이 있더라. 짙은 회색, 연한 회색, 흰 빛에 가까운 회색까지. 흑과 백 사이의 스펙트럼이 그리도 다채로운 줄, 처음 알았다. 그렇게 '우울의 안경'이 벗겨지자, 세상이 서서히 색을 되찾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찬란한 푸른빛이 펼쳐졌고 사이사이 맑은 구름이 떠 있었다. 왜 이 아름다움을 이제야 깨달은 걸까. 그동안 나는 이 순간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나 보다.




우울이란 감정은, 먼저 알아차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부정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수용할 때, 비로소 우울 밖 세상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나를 잘 쉬어주고 보살피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안아주어야 한다.


빛을 마주한 오늘,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시간과 작은 빛이 나를 완전히 구원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스스로를 붙들 수 있게 되어간다.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디디며, 나는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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