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시와 수용, 그리고 관망

단단해지는 방법

by 서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난 이 말이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시은 모두에게 공평하다지만, 우울 속에 빠진 이들에게 체감 시간은 무한히 늘어난다. 그 모든 시간이,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과거의 고통을 버티지 못했다. 내가 그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지나쳐갈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었다. 때로는 시간이 멈춰버리기를, 잠깐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날 그 순간을 간절히 원했다.


고통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꺼내보기조차 힘들었던 아픔뿐이었지만, 그건 동시에 단단함이 되었다. 아픔을 꺼내놓고, 그대로 들여다보고, 그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것. 그러고 나면 조금씩 내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정은 더욱 아플 것이다. 어렸던 나의 고통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는 것, 절대 쉽지 않으리라. 검게 뒤덮인, 외로웠던 나의 조각들. 애써 잊고 있던 기억들을 마주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까. 그러나 고통을 마주하고 수용할 때, 비로소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 시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 고통을 오롯이 마주해야 한다.




나의 우울의 시작, 그 시절의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고통을 다시 마주한다. 너무나도 아프다. 그 아팠던 시절들에 왜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을까, 후회와 원망이 밀려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를 관망할 수 있다. 관망이 가능한 지금, 이제는 그 시간 너머로 한 걸음 내딛는다.



시간은 고통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지나온 나는, 견뎌낼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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