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우유

짝사랑

by 이땡은

"자, 다음 무대는 @@고등학교 1학년 밴드 □□□□입니다!"


얼마나 잘났길래 이 작은 지역에서 환호성이 저렇게 터지는지, 어디 한번 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무대를 감상했다.


'우선 보컬이 좀 생겼고... 다른 친구들도 용모가 꽤 나쁘지 않네. 베이스는 얼굴은 평범한데 키가 엄청 크다'


그렇게 시작된 무대인데... 돌았다. 돌은 놈들이다. 한 곡 한 곡 마스터하기 바빠 곡 하나를 정할 때마다 무작정 들입다 파는 우리와는 가진 여유부터 달랐다. 우리는 곡을 정할 때부터 각 파트별 친구들의 실력을 고려하고, 악보의 유무 여부를 체크하고 정한다. 애드리브를 넣기도 힘들었고 솔로 무대를 가진다 해도 철저히 계산된 연주를 보여줘야 했다. 자연스레 몸은 경직되었고 무대매너를 신경 쓰는 진도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아무 곡이나 소화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여자고등학교 동급생들끼리 급조한 밴드에서 이만하면 구색은 갖추는 거라며 위안 삼고 난이도가 쉬운 명곡을 찾아다녔다. 남들도 다 이 정도 수준이었다. 이 친구들을 보기 전까지는.


와 그런데 이 친구들은 취미인데 왜 이렇게 잘하지? 곡을 가지고 논다. 무대 매너도 너무 좋다. 발라드는 감미롭고 신나는 노래에는 너도나도 호응하며 따라 부르게 됐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베이스를 치는 아이는 존재감이 독보적이었다. 키는 2M에 가까운 듯했고, 패턴 없이 불규칙적으로 몸을 흔들어 재끼면서 베이스를 이러쿵저러쿵 쳐대는 그 모습에 충격받았다. 동시에 수치스러웠다. 곧 있을 내 차례가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창피해졌다. 오늘 공연에 사용할 악기를 저 아이한테 빌리기로 했었는데 같은 악기로 다른 퍼포먼스를 보일 내가 부끄러웠다.




악기 빌려줘서 고마웠어ㅇ...


동갑인데 존대를 써야 하나 반말을 써야 하나. 고마움을 구실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니 시간만 지체된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무색하게도 제법 빠른 속도로 답장이 왔고, 글자 사이사이 가득 배인 예의 바름과 다정함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친구를 통해 그 아이가 초코우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정확히 어떤 초코우유인지 브랜드를 캐묻는데 이상하게 집요한 질문과 상기된 볼을 보며 묘한 기류를 읽었나 보다. 티가 안 나는 게 이상하긴 했다.




또다시 같이 공연할 수 있다니, 그리고 또다시 악기를 빌릴 수 있다니! 개인 악기가 없어 학교 베이스로 연습 및 공연을 다녀야 했는데 너무 고맙다며 답장했지만, 속으로는 또 말 붙일 구실을 만들어주는 걸 고마워했다. 이제 행동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많이?”


편의점에서 초코우유면 죄다 담고 있는 나를 보며 같은 밴드 멤버가 놀라는 눈치였다. 부담스러워하려나? 빼고 주워 담고 빼고 주워 담고, 슬슬 눈치 보일 때쯤 적정한 타협을 보며 적절히 호의로 받아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개수만 남겨 흰색 봉투에 가득 넣어 이고 지고 공연장으로 가져갔다.




차마 말은 못 걸겠고, 얼굴도 도저히 못 마주 보겠기에, 리허설 중 객석에 앉아 쉬고 있는 그 아이의 무릎 위에 털썩 올려놓고 튀었다. 그거 하나 해놓고 심장이 두쾅거려 진정시키는 데 한참 걸렸다. 다른 친구가 그 아이에게 너 초코우유 좋아한다 했더니 고맙다고 사주는 거라며 본인의 입을 대신 사용해 줬다.


바보다. 바보. 이럴 때 길게 마주 보고 대화해 보는 건데.


그런데 그때로 돌아가면 난 또다시 비슷한 행동을 할 거 같다. 그만큼 너무 순수했고, 부끄러움이 심했다.


화요일 연재
이전 07화두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