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얼개미와 미꾸라지 사냥

오빠들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 여름, 도랑에서의 특별한 추억

by 나의글정원 aka 매필정

어린 시절의 여름은

늘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물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고요한 마을을 벗어나면

언제나 생명력 넘치던 푸른 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도랑은

우리 남매에게 세상 모든 놀이터이자

끝없는 탐험의 무대였습니다.


도랑은 논둑 사이로 흐르는 좁은 물길,

그곳은 미꾸라지가 잘 숨고, 물풀이 무성해서

오빠들에게는 '사냥터',

저에겐 늘 동경의 장소였지요.


특히 두 오빠에게 도랑은

'미꾸라지 사냥'이라는

위대한 임무가 펼쳐지는 신비로운 장소였습니다.


파란 플라스틱 통과 ‘반도’를 들고

도랑으로 향하는 오빠들의 뒷모습은

어린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 파란 플라스틱 통,

우리는 그걸 ‘빡케스’라고 불렀습니다.


알고 보니

일본어 ‘바케츠(バケツ)’에서 유래한 말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시절 일상 언어 속엔 일본어가 자연스레 섞여 있던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떠올리면,

그때의 공기와 소리,

오빠들의 손에 들려 흔들리던

파란 빡케스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집니다.


그 빡케스를 바라보며 저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어린 여동생이었던 저는

그들의 모험에 끼어들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아직 작고 연약한 몸이었기 때문이지요.


그저 오빠들의 뒷모습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제게,

그날의 준비물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특별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특별함도,

알고 보면 오빠들의 ‘궁리’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처음부터 오빠들에게

변변한 도구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반도’를 살 형편이 어려웠던 그 시절,

오빠들은 ‘반도’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체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얼개미’였습니다.

왕대나무로 만든 크고 둥근 얼개미는

엄마가 타작한 곡식에서 돌을 골라내거나,

깨를 털고 떡쌀을 곱게 빻을 때 쓰시던 귀한 살림도구였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나의글정원 aka ···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나의글정원 aka 매필정'입니다. 상담, 교육,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경험을 통해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성장과 치유'라는 주제로 글을 씁니다.

66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