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 여름, 도랑에서의 특별한 추억
어린 시절의 여름은
늘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물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고요한 마을을 벗어나면
언제나 생명력 넘치던 푸른 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도랑은
우리 남매에게 세상 모든 놀이터이자
끝없는 탐험의 무대였습니다.
도랑은 논둑 사이로 흐르는 좁은 물길,
그곳은 미꾸라지가 잘 숨고, 물풀이 무성해서
오빠들에게는 '사냥터',
저에겐 늘 동경의 장소였지요.
특히 두 오빠에게 도랑은
'미꾸라지 사냥'이라는
위대한 임무가 펼쳐지는 신비로운 장소였습니다.
파란 플라스틱 통과 ‘반도’를 들고
도랑으로 향하는 오빠들의 뒷모습은
어린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 파란 플라스틱 통,
우리는 그걸 ‘빡케스’라고 불렀습니다.
알고 보니
일본어 ‘바케츠(バケツ)’에서 유래한 말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시절 일상 언어 속엔 일본어가 자연스레 섞여 있던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떠올리면,
그때의 공기와 소리,
오빠들의 손에 들려 흔들리던
파란 빡케스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집니다.
그 빡케스를 바라보며 저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어린 여동생이었던 저는
그들의 모험에 끼어들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아직 작고 연약한 몸이었기 때문이지요.
그저 오빠들의 뒷모습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제게,
그날의 준비물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특별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특별함도,
알고 보면 오빠들의 ‘궁리’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처음부터 오빠들에게
변변한 도구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반도’를 살 형편이 어려웠던 그 시절,
오빠들은 ‘반도’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체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얼개미’였습니다.
왕대나무로 만든 크고 둥근 얼개미는
엄마가 타작한 곡식에서 돌을 골라내거나,
깨를 털고 떡쌀을 곱게 빻을 때 쓰시던 귀한 살림도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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