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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현역의 흔한 착각.txt

by 김건우

드디어 고3. 본격적인 수능 준비가 시작됐다. 나는 문과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수능은 국어와 수학이 A형과 B형으로 나뉘었고, 영어는 공통 과목이었다. 문과생은 국어B형, 수학 A형, 영어와 함께 사회탐구 두 과목을 응시해야 했다. 문과생들은 제2외국어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회탐구 과목 중 한 과목의 성적이 저조할 경우, 제2외국어 점수로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어나 아랍어가 인기였다.

반면, 이과생은 국어 A형, 수학 B형, 영어, 그리고 과학탐구 두 과목을 응시해야 했다. 특히 서울대는 정시 전형에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는데, 문과생은 사회탐구로 한국사를 포함해야 하고, 제2외국어도 반드시 응시해야 했다. 이과생은 과학탐구 II 과목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사회탐구 과목으로 한국사와 윤리와 사상을 선택했고, 제2외국어는 베트남어와 아랍어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탐구 과목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3이 되기 전 겨울방학에 개념 1회독을 끝내는 게 정석인데, 나는 그것을 놓친 상태였다. 결국 고3이 되자마자 각종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통해 사회탐구 인강을 듣기 시작했다.


사실 인터넷 강의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고2 때였다. 당시 나는 내가 영어 과목을 꽤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모의고사에서는 100점이거나, 많아야 한두 문제를 틀리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2 7월 모의고사에서 영어가 다소 어렵게 출제되자, 내 실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과는 78점, 2등급 후반이었다. 영어 모의고사는 총 45문제를 70분 안에 풀어야 하고, 17번까지는 듣기 평가다. 공부 좀 한다고 하는 학생들은 듣기에서 절대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듣기에서조차 한 문제를 틀렸고 독해 영역에서는 연달아 오답을 냈다.


충격을 받은 나는 그때부터 인터넷 강의를 찾아 독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EBS의 로즈리 선생님 강의는 탁월했다. ‘사람이 이렇게 잘 가르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이후 메가스터디의 김기훈, 이투스의 심우철 선생님의 강의도 결제해 듣기 시작했다. 기초는 있었기에 강의가 흥미로웠고, 복습도 꼼꼼히 했다. 그 결과 고2 11월 모의고사에선 영어 성적을 다시 100점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강을 마음껏 들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요즘처럼 1년 단위로 ‘무제한 패스’를 구매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단과로 결제해야 했다. 듣고 싶은 강의가 생길 때마다 교재비에 배송비까지 합쳐 도합 2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올 거란 막연한 믿음과, 엄마 지갑을 또 열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회탐구도 영어처럼 2학년 때부터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고3이 되면 국영수 공부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에 한국사와 윤리와 사상 개념까지 인강으로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고3의 첫 모의고사를 맞이했다. 국어는 98점, 수학은 96점, 영어는 100점. 국영수에서는 단 두 문제만 틀린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사가 문제였다. 근현대사 진도를 아직 끝내지 못해 50점 만점에 37점, 3등급을 받았다. 국영수 점수만 보면 전국 상위 0.22%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한국사만 끌어올리면 서울대도 되겠는데?’ 싶었지만, 나는 몰랐다. 재수생이 치지 않는 3월 학력평가는 사실상 ‘가짜 시험’에 불과하다는 것.


고3이 되면 수능을 대비해 여러 차례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다. 3월, 4월, 6월, 7월, 9월, 10월 총 여섯 번의 모의고사를 치른 후 11월에 실제 수능이 진행된다. 이 중 6월과 9월 모의고사는 특히 중요하다. 다른 모의고사는 대부분 각 시도별 교육청에서 출제하지만, 6월과 9월 모의고사는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직접 문제를 낸다. 성적표 양식도 수능과 비슷하다. 이와 관련해 입시판에서 떠도는 유명한 밈이 하나 있다.

'9잘수망, 9망수잘.'

9월 모의고사를 잘 보면 수능을 망치고, 반대로 망치면 수능을 잘 본다는 뜻이다. 마치 징크스처럼 떠도는 이 말이 내게도 해당될 줄은 몰랐다.

9월 모의고사 날, 시험은 전체적으로 평이했다. 시간도 넉넉했고, 막히는 문제도 없었다. 시험이 끝난 뒤 채점을 해보니 전체 과목에서 단 두 문제만 틀렸다. 국어 한 문제, 한국사 한 문제.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그래도 두 문제만 틀린 것은 훌륭한 성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9잘수망의 법칙이 진짜라면? 수능날 정말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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