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허구
고3 시절, 3월 한 달은 번호순대로 시험대형으로 앉아 있었다. 문과반이었고, 남녀합반이었다. 처음엔 반에 누가 있는지도, 이름이 뭔지도 잘 몰랐다. 나는 그때까지 이성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4월 첫째 주, 자리를 바꿨다. 내 앞자리엔 여학생이 앉았다. 긴 흑발이 단정하게 내려앉은 아이였다. 좋은 향기가 났다. 나는 그날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너가 건우구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늘 영화나 드라마에서 첫눈에 반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저건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내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그녀가 내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 그 순간—심장이 쿵쾅대고, 몸이 굳는 기분을 처음 알게 됐다. 정말,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이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녀의 얼굴이 내 시야에 클로즈업되었다.
나는 첫사랑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날 이후로,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나는 자꾸만 그녀를 바라보게 됐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싱긋 웃어주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눈동자가 무의식적으로 커지는 걸 느꼈다. 자연스럽게 선물 공세를 시작했다. 매점 자판기에서 사탕을 사다 건네고, 야자 시간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대신 풀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수학에 약했다. 문제를 풀어줄 때면, 목소리를 깔고 괜히 멋있는 척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4월 말, 그녀의 생일에도 간식을 챙겨주며 호감을 표현했다. 그녀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내 왼손에 대해 알까?’
‘나 같은 장애인이, 그 사실을 숨기고 누군가와 사귀어도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이 쌓이며 우울해졌다. 그래서 잠시 그녀에게 쌀쌀맞게 굴기도 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꼴이었다. 그래도 그녀와 대화할 때, 그녀의 미소를 보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나도 내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실실 웃게 되었다.
하루는 그녀와 단둘이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다. 친구랑 영화를 본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고3이 놀러다닌다며 화를 내셨다.
“영화만 보고, 밥은 먹지 말고 곧장 들어와.”
결국 나는 그날 바보같이 영화만 보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너무 마마보이처럼 보인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함께 영화 본 친구가 여학생이라는 걸 알고는 “미리 말하지 그랬냐”고 했다.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은 점점 커졌다. 하지만 동시에, 내 장애에 대한 의식은 내 감정의 발목을 잡았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쌀쌀맞게 대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결국 카카오톡으로 최악의 고백을 해버리고 말았다.
“널 좋아해. 내가 싫지 않다면, 나랑 사귀어줄래?”
그녀는 좋다고 했다. 그날 나는 정말 기뻤다. 평소 아침잠이 많아 알람을 몇 개씩 맞춰도 못 일어나던 내가, 그날부터는 눈이 절로 떠졌다. 눈을 뜨면 그녀 생각이 먼저 났고, 바로 학교로 달려갔다.
우리는 잘 맞았다. 나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받아주었다. 고3 자율학습은 토요일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일주일에 여섯 날을 붙어 있었다. 항상 붙어 다니다 보니, 반 친구들의 따끔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토요일 자습이 끝나면 같이 저녁을 먹고 데이트를 했다. 연애 날짜를 세는 어플도 깔았다. 100일을 맞아 반지를 선물하고 싶어서, 용돈을 모아 25만 원짜리 반지를 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동네 귀금속점에서 산 반지 안쪽에 다른 사람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보고 당황했지만, 그녀는 실망한 기색 없이 웃었다. 결국 그 반지는 다시 되팔고, OST 매장에서 은 커플링을 맞췄다.
커플링은 보통 왼손 약지에 낀다. 하지만 내게 왼손 약지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그래서 오른손 약지에 낄 반지를 준비했다. 그녀는 내 손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배려해주는 걸까?’
하지만 문제는 내 손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점점 불안에 잠식당했다. 과연 내가 그녀 곁에 있을 자격이 있는 걸까, 그런 의심이 날마다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 일 아닌 장면조차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다른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할 때면, 괜히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질투라기보다, 막연한 불안이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혼자 남겨질 것 같았다.
9월 모의고사를 칠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내가 두 문제 틀린 모의고사를 그녀가 채점해주며 “이 정도면 서울대도 가겠다.”면서 기뻐해줬다. 그녀는 내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10년 연애 후에 결혼에 골인하자는 달콤한 대화도 나눴다.
하지만 나는 흔들렸다.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 어쩌지? 사이가 멀어지는 것 아닐까? 장거리 연애가 가능할까? 미래를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점점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후회하고, 다신 상처주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반복했다.
결국 그녀가 먼저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리고 10월, 우리는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이유 없이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감정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진학 담당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이제 더는, 그 친구에게 말을 걸거나 접근하지 마.”
며칠 뒤 다시 학교에 온 그녀는, 내가 알던 그 미소 많던 사람이 아니었다. 눈빛도, 말투도, 행동도 전부 달라져 있었다. 나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나는 그날 이후 날마다 집에서 울어댔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써준 편지만 붙들고, 매일 흐느꼈다. 보다 못한 엄마가 그 편지들과 반지를 다 갖다 버렸다.
“아픈 환자는, 열부터 내리고 봐야 해.”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아직도 종종 그녀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잘했다면, 십 년이 지난 지금쯤 그녀와 결혼을 했을까?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녀만큼 나를 설레게 만든 사람은,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잊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도 과거에 갇혀 사는 기분이다. 과거와 미래는 언제나 허구다. 오로지 현재에 집중해야만, 사람은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그 허구 속으로 빠져든다. 행복했던 날들과, 참담했던 날들로 이루어진 그 허구의 이름은, 첫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