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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고 마킹하고 채점하라

2016학년도 수능, 나의 하루 보고서

by 김건우

2015년 11월 12일, 드디어 수능 당일. 정식 명칭은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2016년도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수능 전날은 학교에서 일찍 귀가시켜 준다. 후배들의 응원 박수 속에서 장도식까지 마쳤지만 나와 친구들은 기행을 벌였다. 바로 PC방에 간 것이다. 어차피 공부는 안 될 거라며,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 우리는 롤 몇 판을 돌리고 집에 갔다.


수능 전날 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결국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수능 당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도시락과 필기구를 챙겨 집을 나섰다. 컴퓨터용 사인펜, 샤프, 아날로그 시계 등 빠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시험장인 동원고등학교로 서둘러 향했다.


수능 당일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갑고 날카로웠다. 나와 마주한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 하나, 오늘 하루만 끝나면 이 지긋지긋한 수험 생활도 끝이라는 사실이었다.


첫 교시 국어가 시작되었다. 국어는 총 45문제에 80분이다. 15문제는 화법과 작문, 문법 영역으로 발표 상황, 글쓰기 상황, 중세 국어 문법 등이 출제된다. 다른 15문제는 문학 영역으로 시, 소설, 수필 등을 읽고 감상하는 문제들이 출제된다. 마지막 15문제는 비문학 영역으로, 인문, 사회, 과학 등의 설명문이 등장해 독해를 요구한다.


나는 평소 국어에서 시간 부족을 자주 경험했다. 보통 비문학 영역의 난이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화작문 영역(화법과 작문, 문법 영역)을 먼저 푼 후 문학 영역을 풀고 맨 마지막에 비문학을 풀기로 작전을 세웠다. 화작문 영역을 다 풀고 시간 체크를 한 번 하게 되는데, 이때 보통 20분 안쪽으로 끊어야 한다. 그런데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답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찌저찌 다 풀고 시간을 확인하니, 맙소사! 25분이나 지나 있었다.

내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문학 영역을 급하게 풀기 시작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지만, 나는 시간 압박을 못 이겨 문학 영역을 게 눈 감추듯 풀어버렸다. 평소라면 모든 선지를 검토했겠지만, 답이 보이면 곧장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문학까지 다 풀자 남은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마킹 시간 5분을 빼면, 비문학 문제를 25분 안에 끝내야 했다.

비문학 영역에선 총 4지문이 출제되었고, 가장 까다로워 보이는 과학 지문을 뒤로 미루고 나머지 지문부터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그 과학 지문을 읽었는데, 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항력과 부력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었는데, 시간이 급해 글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 지문에 딸린 두 문제는 모두 찍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찍은 정답이 하나라도 맞길 기도하며, 2교시 수학 시험에 돌입했다.


당시 문과 수학 영역은 대체로 쉬운 편이었다. 총 30문제에 100분이 주어졌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가장 어려운 30번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스물 아홉 문제를 50분 안에 해결하고, 남은 50분을 30번 한 문제에 쏟는 전략을 취했다. 그래서 1등급 커트라인이 30번 한 문제만 틀린 96점 선에서 형성되곤 했다.


수학만큼은 자신 있었다. 6월, 9월 모의고사 모두 100점을 받았기에, 이번에도 30번 문제에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면 풀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시험지를 펼치자 29번까지는 막힘없이 풀렸다. 문제는 역시 대망의 30번이었다.


한 번 풀어보았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해결 과정이 빙빙 돌았고,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넉넉했기에, 시험지에 풀이 과정을 꼼꼼히 적어가며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이게 웬걸.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결국 30번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수학 30번은 주관식이라 찍어서 맞출 확률은 거의 없다. 틀렸다고 봐야 했다.


국어에서도 두 문제를 찍고, 수학에서도 30번을 놓쳤다니—슬슬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 뒤로 미룬 채, 점심을 먹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3교시 영어 시험에 들어갔다.


영어는 반드시 100점을 받아야 했다. 영어에서 난이도를 좌우하는 문제는 빈칸 추론 문제로, 총 네 문제가 출제된다. 그런데 그 중 한 문제가 너무 까다로웠다.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 월트 휘트먼에 대한 지문이었는데, 글의 주제가 잘 잡히지 않았다. 뜬구름을 잡는 듯한 문장만 이어졌고, 결국 9월 모의고사 때와는 달리 감을 잃은 채 애매하게 답을 찍어야 하는 문제가 몇 개 있었다.


탐구 영역은 평이하게 출제되었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문제에 몰입하기 어려워졌다. 난이도로 따지자면 한국사는 쉽게 출제되었고, 윤리와 사상은 헷갈리는 문제가 몇 개 있었다.


마지막 제2외국어 시험에서 나는 아랍어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영수와 탐구 과목에 밀려 아랍어는 제대로 공부조차 하지 못했다. 알파벳만 외운 채 시험장에 들어갔고, 풀 수 있는 문제는 고작 1번뿐이었다. 나머지 문제들은 알라신께 기도하며 마킹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후련하면서도 어딘가 텁텁했다. 평소와 달리 찍은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마음 속에서 걱정이 계속 맴돌았다. 전체적으로 작년 수능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수능 시험의 정답은 당일 저녁, 시험 순서대로 공개된다.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았다. 이제 남은 건 정답과 마주하는 일뿐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쉰 채, 국어 영역 정답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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