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입니다."
대학교의 방학은 진심으로 정말 길다. 고등학생 때는 여름방학이라고 해봤자 4주도 안 되고, 그마저도 매일 자습실을 오갔다. 대학생의 방학은 그야말로 ‘자유의 몸’이나 다름없었다. 6월 중순쯤 수업들이 하나 둘씩 종강을 하면 9월 초 개강 전까지 수업이 없다. 거의 2달 반을 통째로 쉬게 된다. 나는 그 긴 방학을 맞아 기숙사를 벗어나 수원 본가로 돌아간다. 사람 구실 좀 하러 말이다.
친구들마다 방학을 즐기는 방법은 뚜렷했다. 누군가는 여행을 다니고, 누군가는 알바에 목숨을 걸었고, 나는 그 사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친구를 만나고, 과외를 하거나 혹은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집구석에서 뇌가 녹아내리는 기분을 만끽했다. 교대 학비가 한 학기에 190만 원 정도로 저렴했기 때문에, 나는 국가장학금과 과외 알바비로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학비 정도는 내가 번다, 이게 내 자존심이었다.
과외는 스무살부터 시작했다. 경희대 다닐 적, 그러니까 만 열여덟 살부터 시작했다. 첫 과외비는 엄마 친구 아들에게 고등 수학을 가르쳐주고 받은 20만 원이었다.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나는 하위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초부터 다시 잡아주는 데에 나름 소질이 있었다. 시범 강의를 하면 대부분 실제 과외로 연결되곤 했는데, 입소문이 꽤 괜찮게 났다.
과외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일까? 인맥이다. 특히 부모님의 인맥. 엄마가 친구들끼리 수다 떨며 "우리 아들한테 과외 좀 받아볼래?" 했던 말 한마디가 계약 성사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과외 자리는 끊이지 않았다. 주말 과외를 위해 금요일 대학 수업이 끝나자마자 공주터미널에서 수원행 고속버스를 탔다. 하루에 과외를 네 타임까지 뛰었다. 주말 내내 과외만 하다가 일요일에 다시 공주로 내려가야 하는 꽤 빡빡한 일정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과외도 가리지 않았다. 중간고사 수학 시험에서 40점을 맞은 중학생을 맡았다. 두 달 만에 기말고사 성적을 90점까지 올렸다. 비결이 뭐냐고? 한 권의 문제집을 집요하게 세 번 풀리면 된다. 수학은 반복이 답이다.
가장 오래한 과외는 고등학생 두 명 그룹과외였다. 그 둘은 서로 사촌 형제였다. 형은 고2, 동생은 고1일 때 시작해서 두 학생 모두 대학에 갈 때까지 영어를 책임졌다. 형은 공부를 드럽게 안 하는 놈이었다. 숙제는 매번 안 해오고, “어제 뭐 했냐?”고 물으면 늘 “새벽까지 롤 했어요.”라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고3이 되어서도 갈 대학이 안 보이자 내가 적성고사를 추천했다. 같이 문제집도 풀고 열심히 해봤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결국 전문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동생은 좀 달랐다. 이 아이는 성실하고, 미술에 재능도 있었다. 그림을 한 번 봤는데 헉 소리가 절로 났다. 난 물감만 보면 공포가 밀려오는 타입인데, 이 친구의 그림은 타고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성실하게 영단어를 외우고 숙제도 꼼꼼히 해오더니 영어 내신 8등급을 3등급까지 끌어올렸다. 수능에서도 기어이 영어 3등급을 맞더니, 결국 수도권 4년제 미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뿌듯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성적이 올라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을 느꼈다.
솔직히 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를 아예 안 한다. 하루 동안 공부한 시간을 체크해보면 30분도 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자기 직전 공부를 하지 않은 것에 후회한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똑같이 공부를 안 하는, 그런 일상의 반복이다.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만 하면 누구나 성적은 오른다. 내가 그걸 몸으로 배웠다.
특히 내신 시험은 교과서 5회독이 진리다. 교과서가 구깃구깃하게 될 때까지 반복해서 보면 된다. 이렇게 하면 내신 성적은 알아서 잘 나온다. 영어 지문은 달달 외우고, 문법 포인트만 잘 정리해도 성적이 훌쩍 뛴다. 원천중 차석 졸업의 비결이다. 어쨌든 대학생활 내내 과외비는 그런 뿌듯함의 대가였다.
과외라는 게 늘 기분 좋은 추억만 남기는 건 아니었다. 한 번은 아주 기가 찬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보습학원에서 고1 수학 과외를 맡았다. 학원 원장님이 직접 내게 부탁한 과외였다. “우리 애는 내가 가르치면 말을 안 들어, 선생님이 한 번 맡아줘요.” 그리하여 작은 공부방에서 주말마다 수업이 이루어졌다.
학생은 착했지만 공부머리는 그닥이었다. 고등수학 상, 그 난해하고도 심오한 수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진도는 거북이처럼 느렸고,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해 입이 닳고 손이 마를 정도였다. 하지만 내 철학은 명확했다. "열 번 해서 안 되면 백 번 한다." 끈질긴 반복 학습으로 실력이 차츰 오르더니 나중엔 반에서 수학반장까지 한다며 꽤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기뻤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진짜 문제는 그날 터졌다.
그날도 평소처럼 조용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하고 대답하며 문 쪽으로 나가는데, 중년 여성 한 분이 얼굴만 쏙 내밀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수업 중이신가요?”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네, 수업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소에 학원 원장님이 시키던 택배가 자주 왔기에 택배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분이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어 또 한 분이 따라 들어왔다. 두 사람의 목엔 공무원증이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원교육지원청’이라고 써 있었다.
“등록된 강사가 아닌 분이 수업을 진행하시면 불법입니다. 이름이랑 연락처 적어주세요.”
뇌에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손발이 떨렸다. 나는 급히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원장님, 지금 교육청에서 단속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니까,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그냥 사촌 동생 공부 봐준 거라고 해요! 사촌이에요, 사촌!”
그런데 이게 웬걸. 원장님 말소리는 내 휴대폰에서 쩌렁쩌렁 흘러나와 교육청 직원들 귀에 다 들어갔다. 그중 한 분이 갑자기 소리쳤다.
“원장님, 다 들리거든요?”
뭔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내 인적사항을 다 적고, 그날 과외는 조기 퇴근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찌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결국 그 보습학원은 몇 개월간 운영 정지를 당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과외를 하는 건 교육청 신고 없이도 가능하다. 다만 학원 내부에서, 정식 등록 강사도 아닌 채로 수업을 한 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나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이 찝찝했다.
결론적으로, 내 과외는 계속되었다. 다만 장소가 공부방에서 원장님 자택 거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불법은 안 된다. 합법 속에서 지혜롭게 가르치는 게 최고다. 이 사건 이후, 난 ‘과외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