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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스승들

교생의 봄, 공주의 맛

by 김건우

교대 2학년이 되면 실습이라는 이름의 실전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참관실습’이라는 명칭에서 느껴지듯, 학생들 앞에서 본격적인 수업을 하는 건 아니었다. 교실 뒤쪽에 조용히 앉아 담임 선생님의 수업을 지켜보며 참관록을 쓰는, 말 그대로 ‘그림자’ 같은 역할이었다. 실습 학교는 주로 공주 시내나 인근 지역 학교들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실습지는 대전에 있는 노은초등학교였다. 첫 교생 실습이란 가슴 설레는 이벤트다. 남학생들은 주로 양복을 입고 간다. 나도 생애 첫 양복 한 벌을 샀다. 엄마 손에 이끌려 백화점에서 맞춘 회색 체크무늬 양복. 상쾌한 아침, 노은초로 출발하는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정말 선생님처럼 보일까 고민했다.


노은초 3학년 4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애들이 “우와~ 선생님이다!”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3학년은 거의 ‘아기’ 같았다. 손도 작고 목소리도 새털처럼 가볍고, 뭐든지 신기해하며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좋아해주는 존재들이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내가 인기 연예인이라도 되는 양 책상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와 온갖 질문을 퍼부었다.


“선생님 몇살이에요?” “선생님은 어떤 색깔 좋아해요?”

나는 귀여운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줬다. 그때만큼은 교생이 아니라 진짜 선생님 같았다. 수업 시간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메모를 하며 참관록을 썼다. 관찰한 수업 내용을 요약하고, 교사의 발문과 학생들의 반응을 기록하며, 수업의 구조와 흐름을 분석해보는 시간이었다. 일종의 수업 리뷰를 남기는 셈이다. 처음엔 모든 게 신기했다.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의 집중을 이끌어 내는지, 활동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발표하지 않는 아이의 말문은 어떻게 트이게 하는지도 인상 깊었다. 짧은 40분 수업이었지만, 초등학교 수업은 생각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나 역시 점점 그 호칭에 익숙해져 갔다. 마치 예행연습 같았다. 아직 칠판 앞에 서보지는 않았지만, 교실 안에서의 공기,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감각, 그 모든 것이 나를 ‘선생님’으로 만들 준비를 시켜주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실습이 끝났을 땐 아쉬움이 컸다. 단순히 교대 수업을 듣는 것과는 다른 실전의 맛이 있었다. 교실은 살아 있었고, 그 안의 아이들은 내가 들어봤던 어떤 교수님의 말보다 훨씬 진실되고 시끄러운 스승들이었다.


교대생의 식생활은 간단명료하다. 자취방에서 대충 때우거나 학교 주변 식당에서 먹는 것이다. 물론 교내에 학생 식당도 있다. 문제는 그 퀄리티가 뭐랄까. 애매했다. 그래서 1학년 초에만 반짝 학식을 먹고 다들 자연스럽게 외식 루트로 빠지게 된다. 매년 수익성 문제로 학식 업체가 바뀌었지만, 맛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정문 앞엔 식당들이 쭉 늘어서 있다. ‘미호분식’에선 떡볶이가 나를 유혹했고, ‘오래올레’에서는 얼큰한 뼈해장국 냄새가 절묘하게 코를 찔렀다. 중국집 ‘준차이’도 있었는데, 가깝고 가성비 좋은 중식당이었다. 제민천을 따라 골목을 조금만 올라가면 ‘영동식당’, ‘주연이네’, ‘곰골식당’ 같은 이름부터 정겨운 한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곰골식당은 생선구이와 석쇠불고기로 유명한 곳인데, 방송도 탄 집이었다. 그런 곳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한적한 공주 시내를 산책하면 마치 내가 신선이 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자주 갔던 곳은 ‘로리네’라는 초밥집이었다. 착한 가격에 맛있는 초밥을 먹을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을 이용하려면 금강을 건너 공주대 쪽으로 가야 했다. 그 곳은 ‘공주시’라는 이름이 어울렸다. 영화관도 있고, 높은 건물도 있었고, 사람들도 북적였다. 공주교대는 ‘군’에 가까웠다. 공주대 쪽이 시내였다.

축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주교대도 매년 축제를 했다. 학생들이 직접 꾸리는 소박한 잔치지만 분위기는 괜찮았다. 작은 선술집도 있고, 연예인들도 왔다. 기억나는 그룹으로는 에픽하이, 오마이걸 등이 있다. 오마이걸 공연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렌즈가 총구만 한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온 외부인들이 ‘직캠’을 찍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반면 공주대 축제는 스케일이 컸다. 푸드트럭도 오고, 연예인 라인업도 빵빵했다. 야간 무대에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거기서 처음으로 ‘선미’를 봤는데, 텔레비전으로 보던 이미지랑 전혀 달랐다. 체구는 뼈밖에 없어 보일 정도로 앙상했고, 얼굴도 진짜 작았다.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잔잔한 우리 학교 축제도 좋았다. 북적이는 공주대 축제도 흥겨웠지만, 동기들이랑 둘러앉아 마시는 막걸리 한 사발이 소박하고 따뜻했다. 지방 소도시의 고즈넉한 대학 생활, 그것도 공주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서의 삶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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