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로더 도전의 쓴맛
교대 앞에 '게임존'이라는 작은 PC방이 하나 있었다. 이 동네 유일한 피시방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요금이 무려 1시간에 1,200원이었다. 지금이야 동네 어디든 500원짜리 피시방도 수두룩하지만, 그땐 울며 겨자 먹듯 그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교대생들이 그곳에서 게임을 즐겼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회에서 교내 스타리그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건 참가해야만 했다. 학창시절 방학만 되면 집에서 밤새 스타를 했던 나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집에서 스타를 하면 그 옆에 붙어 앉아 구경하다가, 상대방이 나가고 남은 맵에서 저글링 하나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혼자 놀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그 시절부터 스타는 내 삶의 일부였다.
주종은 프로토스. 이유는 단순했다. 쉽고 세니까. 질럿은 기본 유닛임에도 강했고, 다크템플러는 상대방 일꾼을 단번에 죽이면서도 경고음도 안 나서 완전 사기였다. 단축키도 모두 외우고 있었고, 세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손가락을 크게 벌리는 건 좀 버거웠지만, 손은 결국 머리를 따라가는 거다.
스타리그도 열심히 챙겨봤다. 온게임넷 스타리그(OSL), MBC게임의 MSL, 그리고 팀 대항으로 진행되던 프로리그까지. 그때야말로 e스포츠의 태동기이자, 동시에 황금기였다. 나는 특히 화승 OZ의 이제동 선수를 좋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직접 해본 경험상, 세 종족 중 저그가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닛 체력이 약해 컨트롤이 중요하고, 일꾼 유닛인 드론으로 건물을 짓는 방식도 운영에 까다로웠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약한’ 저그를 들고 우승을 해버리는 이제동이 정말 멋져 보였다.
그의 특기는 레어 체제에서 저글링-뮤탈로 끝내는 전략이었다. 특히 상성상 불리한 테란 상대로도 승률이 높았는데, 뮤탈 컨트롤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최대 라이벌인 이영호가 괜히 미웠다. 이영호는 스타 역사상 최강의 선수였지만, 너무 자주 이제동을 이겼다. 지금도 스타리그는 ASL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즌이 열릴 때면 가끔 챙겨보는, 나만의 작은 유흥이자 오래된 추억이다.
교대에도 은근히 스타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랭크 게임 A등급을 달성한 K, 연세대 물리학과를 중퇴한 19학번 후배 B. 이들과 게임을 하면 자주 졌다. 중장기 운영 싸움으로 가면 거의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초반 쇼부만 준비했다. 쇼부란, 초반에 끝장을 보는 올인 러시를 뜻한다. 4드론 저글링 러시, 센터 투게이트, 세빠닥(세상에서 제일 빠른 다크템플러) 같은 빌드가 대표적이다. 난 프로토스를 주종으로 썼기 때문에, 센터 투게이트와 세빠닥, 그리고 패비터(빠른 아비터) 전략까지 연습했다.
드디어 대회 날. 참가자는 겨우 8명. 8강부터 시작하는 작은 대회였다. 우리는 PC방에 모여 대진표를 먼저 짰다. 다행히 최강자 K와 결승에서나 맞붙게 되는 대진이었다.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잡았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손이 덜덜 떨렸다. 첫판은 센터 투게이트. 6 프로브 타이밍에 일꾼 하나를 센터에 보내, 게이트웨이 두 개를 건설하고 질럿을 쏟아붓는, 전형적인 초반 러시. 뒤가 없는, 말 그대로 쇼부였다. 하지만 먹혔다. 상대는 내 질럿에 제대로 휘둘렸고, 결국 gg를 받아냈다. 2:0. 나는 그대로 4강에 직행했다.
4강 상대는 테란. 나에게 상성이 유리한 종족이었다. 초반 다크템플러로 큰 피해를 주고, 곧바로 앞마당을 가져갔다. 이후엔 빠른 테크트리를 바탕으로 아비터를 뽑았다. 아비터는 ‘리콜’이라는 사기 스킬을 쓸 수 있다. 내 유닛 뭉치를 통째로 순간이동시켜, 상대 본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술이다. 상대방은 한박자 빠른 내 리콜 타이밍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2:0 승리. 의외로 쉽게 결승에 올랐다. 어라? 내가 결승이라고? 스타판에서는 첫 출전에 우승까지 해내는 선수를 ‘로열로더’라고 부른다. 나도 공주교대 스타리그의 로열로더가 되는 건가 싶었다.
결승 상대는 그 대회를 주최한 학생회 임원이자 우리학교 스타고수 K였다. 평소에도 붙기만 하면 내가 쩔쩔매던 친구였다. 내가 프로토스를 고르면 그는 저그를, 테란을 고르면 프로토스를 골랐다. 상성상 우위인 종족을 노린 것이다. 게임 안에서만 ‘카운터’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대회 룰조차 철저히 그의 입맛대로였다. 나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랜덤 종족'을 꺼내려 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건 안 돼.”
첫 판, 센터 투게이트. 상대는 저그로 9오버풀-안정적인 빌드를 꺼냈다. 시작부터 내가 지고 들어갔다. 결국 막혔다. 깔끔하게 막혀버렸다. 컨트롤에서도 확실히 밀렸다. 그대로 GG. 두 번째 판은 부종족인 테란을 꺼냈다. 전략은 ‘대나무 테란’. 본진 바깥에 몰래 팩토리를 하나 더 지어 벌처 마인을 깔고, 탱크-마린으로 밀어붙이는 빌드였다. 처음엔 잘 풀리는 듯했다. 마인도 제대로 박혔고, 전진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병력 컨트롤 미스로 전투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K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받아쳤다. 속도전에서 밀렸다. 이전 상대들과는 격이 달랐다. GG. 두 번째 판이 참 아쉬웠다. 구경하던 친구들이 연신 탄성을 질렀고, K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
하지만 결국 2:0으로 졌다. 내 생애 첫 결승이자, 유일한 결승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얘네는 내가 세 손가락인 걸 알까?’
교대생 시절, 동기들과 어느 정도는 친해졌지만, 내 왼손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처럼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개인주의적으로 흐른다. 서로의 생활을 깊게 들여다볼 일이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내 왼손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는 친구들이 생긴다. 같이 당구를 치거나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삼겹살을 굽고 자를 때 말이다. 그렇게 생활 속 순간들에서 종종 들킨다. 나는 내 장애를 굳이 감추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쪽을 선호한다. 내 세 손가락을 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야, 니 왼손 두 쪽은 어디다 뒀는데?" 하고 웃으며 넘기는 친구도 있고, "너 언제부터 그랬어?" 하고 진지하게 묻는 친구도 있다.
그 '언제부터 그랬냐'는 질문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의외로 민감한 말이다. 사고로 손을 잃었다면 안타까운 이야기로 소비되지만, 선천적인 장애라면 어딘가 결함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그건 내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은 늘 내 속을 한 번 휘저어놓는다.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 대답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