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습 일지
3학년이 되면 진짜 실습이 시작된다. 이 한 달간의 교육실습은, 뒤에서 참관록이나 쓰던 2학년 실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에는 무려 아홉 번의 수업을 직접 해야 한다. 각 과목 별로 수업 계획서를 짜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40분 간의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나는 공주교대부설초등학교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긴장되는, 교대 바로 옆의 부설초였다. 가까운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지만, 실습생들 사이에서는 “거긴 좀 빡세다.”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유인즉, 부설초에는 승진을 노리는 선생님들이 자원해서 오기 때문에, 퇴근도 밤 9시가 되서야 하고, 실습생 관리도 그만큼 철저하다는 것이다.
내가 배정받은 반은 3학년 1반. 총 다섯 명의 교생이 함께 들어갔다. 첫 일주일은 가볍게 시작된다. 담임 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맛보기 수업을 하나 정도 해본다. 둘째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여러 수업을 짜야 했다. 교생들은 각자 전공에 따라 세안 하나, 약안 여덟 개를 작성해야 했다.
자, 여기서 잠깐. ‘세안’과 ‘약안’이 뭐냐고? 간단히 말하자면 둘 다 수업계획안이다. 약안이 핵심만 간단히 요약한 개조식 수업 계획서라면, 세안은 그야말로 A4 열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정성의 산물이다. 학습자의 실태를 파악한 후 수준에 맞게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수업은 ‘동기유발-전개-마무리’라는 기본 틀로 이루어진다. 40분 수업 시간 안에 아이들을 배움 속으로 끌고 들어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내용 정리 및 평가까지 마쳐야 한다. 동기유발 단계에선 보통 전 차시에 배웠던 내용을 상기시키거나, 오늘 배울 내용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 시간에 ‘자연재해 예방’을 배운다면, 태풍 피해를 다룬 애니메이션 클립을 보여주고 “이런 일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은 발문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전개 단계는 본격적인 활동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이때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은 지양된다. 아이들 중심의 참여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업 설계 시 가장 고민하며 힘을 주는 단계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수준과 흥미를 고려하여 적절한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 마무리 단계에선 오늘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다음 차시 예고로 수업을 정리한다.
내 전공은 영어교육이기에, 영어 수업을 세안으로 작성해야 했다. 실제로 수업을 설계하고 직접 해보려고 하니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가장 큰 참사는 음악 수업에서 터졌다. 박자 개념을 이해한 후 제재곡을 기악 합주해보는 차시였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먼저 아이들에게 박자란 무엇인지 설명하고, 동영상을 보여준 뒤 박수 치기로 리듬감을 익힌다. 조별로 악기를 나눠 합주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순회 지도 후 모둠별로 합주를 하면 그럴듯한 기악 합주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엉켰다. 내가 준비한 동영상이 너무 어려워 아이들이 박자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또 악기를 나눠주고 “자, 이제 모둠별로 연습해 볼까요?”라고 했더니, 교실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북은 북대로, 실로폰은 실로폰대로, 멋대로 울리고 때리고 두드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조별로 돌아다니며 도와주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악기 시범 한 번 안 보인 내가 원망스러웠다.
수업 나눔 시간, 결국 나는 교실에 감도는 싸한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악기 활동 전에 아이들이 뭘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안내가 부족했어요.”
맞는 말이었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수업이 망했단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속은 쓰렸지만 꾹 참았다. 나는 남의 수업을 굳이 비판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알 테니까. 그만큼 내 첫 음악 수업은 처절히 폭망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 수업에서는 내 능력을 보여주마. 수업 과목은 도덕이었다. 학습 주제는 ‘공익의 중요성’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동기유발에는 역시 실화가 최고다.
“얘들아, 쌤이 너희들처럼 초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야. 그날,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어. 새로 사준 운동화를 신고 마트에 다녀오랬지. 그런데 가는 길에… 개똥을 밟아버린 거야!”
아이들은 똥 얘기에 열광했다.
“그 운동화 바닥에 개똥이 쫙하니 눌러붙은 거야. 쌤 기분이 어땠을까?”
“울었어요!”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요!”
“맞아. 그런데 그 개똥, 왜 거기 있었을까?”
“주인이 안 치웠어요!”
“맞아. 주인이 치우지 않은 행동은, 공익을 위한 행동이었을까?”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만약 모든 사람이 개똥을 안 치운다면, 우리 동네는 어떻게 될까?”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교과서 속 개념으로 부드럽게 연결했다. 그 수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담임 선생님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라며 칭찬해 주셨다. 나도 속이 후련해졌다.
다음은 세안으로 준비한 영어 수업. 나는 ppp 방식(Presentation-Practice-Production)을 활용한 수업을 준비했다. 주제는 Can you swim?과 같은 질문을 하고 Yes, I can 또는 No, I can't로 대답하는 말하기, 듣기 영역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활동을 구성할지 막막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구문을 연습하게 하지? 그때 담임 선생님이 두 가지 게임을 추천해주셨다.
첫째는 ‘Pass the ball’. 음악이 나오면 아이들끼리 공을 돌리다가, 음악이 멈췄을 때 공을 들고 있는 아이가 나와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 반응이 폭발적인 게임이다. 실패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둘째는 ‘Sleeping elephant’.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린다. 한 명씩 일어나 자신이 외워야 할 단어를 5초간 본다. 나중에 모둠별로 각자가 외운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게임이다. 집중력과 기억력까지 자극하는 멋진 활동이었다. 재밌는 활동 덕분에 영어 수업도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참여했고, 수업 시간 40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한편, 실습 기간 중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한 여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이유인즉슨 개구장이 남학생이 “너 베트남 사람이라며?” 하고 놀린 것이다. 실제로 그 여학생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고, 어머니가 베트남인이었다. 나는 속이 뒤집어졌다. “너, 그런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저 교생이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다짐했다.
‘나중에 교사가 되면, 이런 아이들 곁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싶다.’
그렇게, 내 3학년 실습도 막을 내렸다. 많은 실패와, 몇 번의 뿌듯한 성공, 그리고 잊지 못할 교실 안의 순간들이 쌓여갔다. 실습은 교사가 되기 전 아주 강렬한 예고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