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머신 멸치
4학년부터는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한다. 3학년까지 자유를 누렸다면, 4학년은 그런 거 없다. 놀던 시절은 끝났다. 겨울방학부터 임용 전쟁은 시작된다. 교대생들은 대부분 같은 인강 커리큘럼을 탄다. 백구 선생님의 강의. 백승기, 구자경. 이름에 백과 구가 들어가는 두 선생님의 초등 임용 강의를 듣는다. 인강을 매주 밀리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겨울방학은 성공이다. “첫 술에 배부르랴. 인강부터 다 듣고 복습만 잘하자.” 이게 겨울방학 동안 내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계획을 배신한다. 4학년 실습이 찾아왔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진 바로 그 해. 전례 없는 감염병이 전 지구를 덮쳤고, 실습도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나는 집에서 Teams 어플을 켜고 실습에 참여하게 됐다. 배정된 학교는 아산 북수초. 화상 수업을 해야 했었는데, 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그날은 2교시에 음악 수업이 잡혀 있었다. 나는 전날 밤 수업 준비를 해놓고는, 스마트폰에 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알림을 아무 생각 없이 누르고 잠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는데, 몸이 이상하리만치 개운했다. 창밖에서 비쳐오는 햇빛이 너무 밝았다.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10시였다.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세수를 하고 화상 어플에 접속했지만 2교시 수업은 이미 지나가 버린 상태였다. 결국 오후에 학교 교무부장님께 전화가 왔다. 나는 얼어붙은 채 혼이 났다. “교생이 수업을 놓치면 어떡합니까? 이건 정말 대형 사고에요.” “아… 죄송합니다.” 그야말로 엎드려 절해야 할 상황이었다.
한달간의 실습을 마치고 다시 임용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아침 9시에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가 밤 9시까지 공부했다. 4학년들에겐 밥 먹을 시간도 아깝다. 그래서 다달이 ‘매식’이라는 시스템을 신청한다. 가장 인기 있던 곳은 학사매식이었는데, 나는 선착순에서 밀렸다. 대신 ‘오래올레’라는 뼈해장국집에서 매식을 하게 되었는데 참 만족스러웠다. 가격에 비해 음식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매 끼니마다 메뉴가 바뀌고, 집밥 느낌이라 마음까지 편했다. 고민 없이 그날그날 밥상이 차려진다는 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주중엔 인강을 열심히 들으며 공부했고, 토요일은 일주일 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요일은 오롯이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니? 제민천 골목에 ‘코리아나 헬스장’이 있었다. 공주에서 몸이 가장 좋은 아저씨가 운영하는, 이른바 관장형 헬스장이었다. 요즘 피트니스센터와는 결이 다른, 구식 기구들이 가득한 공간. 쇠 냄새 풀풀 나는 그곳엔 묘하게 중독성 있는 올드스쿨 감성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평생 운동이란 걸 모르고 살던 멸치였다. 키 176에 체중은 50kg. 거울을 보다 보면 너무 마른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헬스장에 등록했다. 근육은 커녕 처음엔 3kg 덤벨도 무겁기만 했지만, 그래도 땀 흘리며 견디는 것이 공부와 닮아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책상멸치’에서 ‘런닝머신멸치’로 진화했다.
초등임용 1차 시험은 두 축으로 나뉜다. 교직논술 20점, 교육과정 80점. 총 100점 만점이다. 교육과정은 다시 A, B로 나뉘는데 각 형마다 출제되는 과목이 다르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전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그깟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이라고 만만히 봤다간 큰코 다친다. 임용 시험 고득점을 위해선 과목의 총론과 각론을 줄줄 외워야 한다. 총론은 국가가 만든 교육과정 문서이다. 각 과목의 이론적 배경, 내용체계표, 수업모형, 평가방법 등의 대한 내용이다. 임용 시험은 서답형이기 때문에 한 글자라도 잘못 쓰면 오답 처리가 된다. 따라서 각 과목 지도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야 했다. 복습할 때는 a4용지에 내가 외운 내용을 산출해보는 공부법을 활용했다. 특히 도덕과의 수업모형은 그 종류와 단계가 많아 지엽적인 암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내용의 휘발성이 강해서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결국 메모장을 만들어서 도덕 수업모형을 휴대하고 다녔다. 시험 당일까지도 외우지 못한 내용을 쉬는 시간마다 보고 또 봤다.
각론은 각 과목 교과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내용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전통 관현악기 편성인 삼현육각이 무슨 악기로 구성되어 있는지, 중중모리장단은 어떻게 치는지 등의 내용들 말이다. 각론은 초등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직접 배우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딱딱한 총론보다는 이해하기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가 아닌, 출판사가 다양한 각론은 외울 양이 너무 많아서 완벽한 공부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용 원서 접수 요강을 훑어보다가 문득 한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장애인 전형’. 나도 그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 왼손, 늘 감추고 숨기며 살아왔던 그 손이 드디어 나에게 실질적인 이점을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대학교 입시 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위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조건엔 주로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이 해당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 임용시험은 달랐다. 등록된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장애인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전형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도 들려온다. “과락만 피하면 합격이다.” 과락은 100점 만점 중 40점 미만일 경우, 순위와 상관없이 자동 탈락되는 기준을 말한다. 말 그대로 40점만 넘기면 합격이라는 뜻이었다. 장애인 전형의 경쟁률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과락만 피하면 된다'는 말에 처음엔 안도했지만, 그게 곧 긴장으로 이어졌다. 혹시라도 임용시험이 예상 외로 어렵게 나와서, 진짜로 내가 과락을 당하면 어떡하지? 그런 상상은 오히려 나를 더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난 항상 불합격의 공포를 생각하며 공부에 속도를 붙이는 타입이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임용 원서를 쓸 때, 나는 본가가 있는 경기도를 시험 지역으로 선택했다. 임용 1차 시험에는 적은 비율로 학점이 반영된다. 실질적으로는 시험 1문제 정도의 미미한 차이지만, 그 한 문제가 천당과 지옥을 가르기도 하니 무시할 수 없다.
학점 석차를 조회해 보니 320명 중 207등. 간신히 3점대를 넘긴 학점이었다.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어차피 임용은 결국 시험 싸움이니까. 그리고 결전의 날은 점점 다가왔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외워야 할 내용이 아직도 산더미 같았다. 과락만 피하면 된다고? 하지만 정말 과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