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은 교실 안에 있었다.

Y 선생, 그 섬의 붕괴

by 김건우

※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나, 개인 식별을 막기 위해 시기·장소·세부 정보를 합쳐 재구성한 글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신규 교사 티를 벗었다. 그 해는 6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다. 수요일만 일찍 끝났고, 나머지 날들은 늘 6교시까지 이어졌다. ‘환경’ 업무를 맡았다. 비교적 쉬운 업무였다. 예전에 내가 힘겹게 버텼던 학교폭력 담당은, 이제 막 교단에 선 신규 교사의 몫이 되었다. 그 무게를 알기에, 괜히 마음 한켠이 쓰라렸다.


같은 학년을 맡은 선생님들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 교사들이었고, 분위기도 비교적 유쾌했다. 자주 함께 식사를 하고 연구실에서 잡담도 나누며 금방 가까워졌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Y 선생님. 그해 마흔이 되던 그는 분명 동학년이었지만,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처음엔 단지 조용한 성격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조용함’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이상했던 건, 학년 회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학교라는 조직에서, 특히 동학년 간 협력이 중요한 구조 속에서 이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던 중 들려오는 소문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요즘도 차에서 잔다더라.”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주차장으로 가더라고요.”
“글쎄 나이스 작업을 하나도 안 해놨더라구.”
실제로 그는 자주 자신의 차량에서 시간을 보냈고, 연가를 쓸 때에도 관리자나 동학년과의 사전 협의 없이 하루 전에 급작스럽게 상신하는 일이 잦았다.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건, 그가 전체 메신저로 보내는 쪽지들이었다.


하루는 급식의 영양성분이 이상하다며 '탄수화물 위주의 메뉴에 비해 단백질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메시지를 전체 직원 메신저에 쏘아 올렸다. 사실상 급식실을 향한 도발이었다. 급식실에서도 이에 대해 반박하는 공지를 보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연세 많은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런 내용은 전체 쪽지가 아닌 개인 메시지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점잖은 의견을 남겼다. 그런데 그에 대한 Y 선생님의 응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랍니까? 냉수 먹고 정신 차리세요.”


더는 괴짜라고 웃어넘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동료 교사들에게조차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의 방식은 학교 조직과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끔 회의에 얼굴을 내밀면, 교직원실의 공기는 일순간 가라앉았고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또 하루는 Y 선생님이 연가를 내어 내가 그의 반에 보결 수업을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교실 문을 열자마자,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분위기가 낯설고 불편했다. 쉬는 시간임에도 대화는 없었고, 아이들은 나를 경계하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아이들 사이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희 반은 남녀끼리 대화 금지에요.”
정말로, Y 선생님은 반 안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대화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던 것이다. 6학년쯤 되면 종종 교내 커플이 생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아이들끼리 좋아한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같이 급식을 먹거나 쪽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그럴 나이지’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옛날 생각도 나고 말이다.


어느 날, Y 선생 반의 남학생이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게시물이었다. 그런데 그 게시물에는 믿기 힘든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바로 담임인 Y 선생이 직접 단 댓글이었다. 댓글의 내용은 단 한 마디. “더럽다.” 정말 눈을 의심했다. 학생의 SNS에, 그것도 기껏해야 만 열두 살 아이들의 사진에 교사가 남긴 말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Y는 이 문제로 교장실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요즘 애들이 너무 빠르다면서, 교육적으로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이셨다. “성교육 관련 예산이 있으니, Y 선생님이 필요하면 외부 강사를 신청해서 수업을 진행해보세요.” Y는 고개를 끄덕이며 교장실을 나갔다가, 몇 초 뒤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저한테 일을 시키시는 거죠?”
교장 선생님도 당황하셨고, 이야기를 듣던 나의 말문도 막혔다. 이후로도 Y의 언행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료 교사에게는, 학교 추천 도서 중 하나에 ‘페미니즘적 사상’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히는 게 옳다고 생각하세요?”라며 따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당신 딸에게도 낙태 교육을 시키실 겁니까?”라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듣는 입장에선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그의 세계는 마치 혼자만의 기준과 확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했다. 동료와의 대화는 늘 일방적이었고, 아이들과의 관계 역시 통제와 단절의 감각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사의 품성과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Y라는 인물은 점점 더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그와 내가 바로 옆 반이라는 사실이었다. 뭔가 일이 터진다면, 그 여파가 우리 반까지 밀려올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불안한 예감은 꼭 현실이 된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급하게 계단을 올라오던 학폭 담당 교사가 나를 붙잡고 물었다.
“혹시 Y 선생님 지금 교실에 계세요?”
질문이 이상했다. 무언가 급박한 일이 생긴 듯했다. 뒤이어 낯선 중년 남성들 몇 명이 사복 차림으로 따라 올라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학폭 사건이 터졌구나 싶었다. 큰 사안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1층으로 내려와 보니, 교문 앞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다. 무거운 공기가 학교 전체를 감싸고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날, 나는 조심스레 가방을 둘러메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학폭 사건이 아니라, Y 선생님이 경찰에 연행되어 갔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혐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 중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SNS에 손잡은 사진을 올린 제자에게 “더럽다”고 댓글을 달고, 반 아이들 사이에 이성 간 대화를 금지시킨다던 사람이, 정작 뒤에선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토록 도덕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후, Y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담임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린 반에는 과학 전담이던 부장 선생님 한 분이 임시로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학생들에게는 큰 혼란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일은 따로 있었다. 이미 구치소에 구금된 그를 위해, 우리가 그의 짐을 정리해 보내주어야 했다. 우리는 그의 교실을 정리하며 묵묵히 박스를 채워나갔다. 서류와 물건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고, 몇 년치 자료들이 뒤엉킨 상태였다.


그 와중에 한 장의 문서를 발견했다. 구겨진 공문 한 장, 제목은 ‘징계처분서’였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과거에 이미 폭행 사건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고, 그것이 이유가 되어 징계 조치를 받았던 기록이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이 교단에 있었던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교직에는 훌륭한 선배들이 훨씬 많다.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준 분들, 지혜롭고 너그러운 교감 선생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때로는, 시스템의 허점 속에 숨어 있는 ‘폭탄’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또렷이 깨달았다.


교단은 누군가에게는 일터이고,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기회의 장소다. 그렇기에 교사는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그런 사실을 새삼스럽게, 그러나 너무도 깊게 가슴에 새겨야 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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