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음악 시간

by 김건우

초등학생에게 음악 시간은 보통 즐겁고 기다려지는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악보를 보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내겐 리코더가 문제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악기는 리코더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부족한 손가락의 개수로는 그 구멍들을 모두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날도 음악 시간, 교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은 유난히 밝았다. 아이들은 설렘 가득한 얼굴로 리코더를 가방에서 꺼냈다. 몇몇은 미리 입에 대고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노래를 뽐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모습들 사이에서 긴장한 채 리코더를 조용히 꺼냈다. 차가운 플라스틱의 촉감이 손바닥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나는 리코더를 천천히 들어 손가락을 맞춰봤다. 내 왼손의 세 손가락은 리코더의 구멍을 다 막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선생님은 친절히 리코더의 운지법을 설명하며, 천천히 하나씩 손가락을 올려보라고 했다. 원래라면 왼손이 위, 오른손이 아래에 와야 하지만 내 왼손은 힘도 약하고 손가락 수도 모자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른손을 위에, 왼손을 아래에 두는 나만의 방식으로 리코더를 잡았다. 주변 아이들이 쳐다볼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덤이었다.

나는 어설프게 구멍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리코더에선 날카로운, 듣기 민망한 소리만 터져 나왔다. 왼손이 구멍을 제대로 막지 못한 탓이었다.

높은 음을 연주할 때는 상황이 나았다. 구멍을 덜 막을수록 오른손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 낮은 음으로 갈수록 나는 삑삑거리며 헤맸다. 노래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만의 운지법으로 불규칙한 소리만 만들어냈다.

그때, 선생님이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따뜻하게 말했다.

"건우야, 괜찮아.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해 봐."

선생님의 말에 내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기악 활동 시간만 되면, 혼자만 겪어야 했던 작은 공포가 나를 괴롭혔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흑역사에 가깝다. 당시 TV에 '네 손가락 희야'라고 불리던 여성 피아니스트가 유명했다. 희야는 장애로 양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 총 네 개뿐이었는데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하며 온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심지어 희야는 부모님들 사이에서 "봐라, 희야도 저렇게 하는데 넌 왜 못하냐"는 잔소리의 단골 예시가 되기도 했다.

희야보다 손가락이 두 배나 많았던 나는 어땠을까?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하얀 깃발을 들고 말았다.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꼬이며 나오는 소리는 연주라기보다는 고통스러운 비명이었다.

’희야는 손가락이 네 개뿐인데도 저렇게 잘 치는데, 나는 여덟 개나 되는 손가락을 가지고 뭘 하는 걸까?‘

이쯤 되면 문제는 손가락 개수가 아니라 음악적 재능이 없는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음악적 도전은 끝났다. 결국, 나의 합주 악기는 트라이앵글의 간결한 ’딩‘ 소리로 귀결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단소를 배우게 되었다. 리코더와 달리 단소는 상황이 나았다. 지공이 단 네 개뿐이라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나도 제대로 불 수 있는 악기를 만났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곧 실망했다.

일반적인 단소의 운지법과는 다르게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 취구에서 가까운 쪽은 왼손으로 잡지만, 나는 오른손으로 단소를 단단히 받치고, 왼손의 몇 안 되는 손가락으로 하나의 구멍만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단소를 잡고 있는 내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단소는 제대로 소리 내기 어려운 악기다. 정확한 각도와 숨의 세기, 입술 모양까지 맞아야 소리가 날까 말까였다. 결국 나는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가장 어울리는 악기는 역시 캐스터네츠뿐이었다.

두 개의 나무판을 가볍게 두드리면 나는 경쾌한 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도, 미세한 숨의 조절도 필요 없었다. 이 간단한 악기만이 나에게 진정으로 허락된 음악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작은 미소를 머금고, 캐스터네츠를 조심스레 두드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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