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서 시험을 치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차석으로 졸업했다. 수원시장상을 받았다. 고급스러운 액자에 상이 들어있는, 그 나이에 받는 상치곤 꽤 근사했고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셨다. 중학교를 선택하는 시기가 다가왔고 나는 중요한 인생의 선택 앞에 서게 되었다.
가까운 북중학교나 창용중학교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원천중학교를 지원했다. 왜냐고? 당시 창용초 학생들 사이에서는 원천중학교가 공부를 열심히 가르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들끼리 만든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었다. 실제로 원천중은 학군지도, 분위기도 별로였다. 학년당 학생 수가 300명이 넘는 큰 학교였고, 그만큼 복잡하고 산만했다.
입학 후에는 반 배치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육과정이 시험범위였다. 운이 좋게도 배치고사에서 남자 1등을 차지했다. 그렇게 1학년 1반으로 편성되었고, 담임선생님은 수학을 가르치는 여선생님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고블린’이라고 불렀다. 중년의 나이에 뾰족한 눈매, 진한 테 안경—정말 게임 속 고블린을 연상케 하는 외모였다. 수업은 엄격했고, 교실 분위기도 꽤 단단했다.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은 금방 다가온다.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에 첫 시험을 치르게 된다. 난 한 달 전부터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평소 공부하던 국영수 주요 과목 이외에 도덕, 기술가정 등의 암기과목 교과서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처음 읽을 때 모든 것을 외우려고 해선 안 된다. 여러 번 반복해 읽을 각오를 하고 1회독은 가볍게 읽어본다. 잘 외워지지 않는 내용은 나만의 두문자를 만들어 외워본다. 시험본 후에 귀신같이 까먹을 두문자이지만 관련 문제가 나왔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내신 공부에 매달린 끝에 나는 첫 중간고사에서 반 1등, 전교 4등을 했다. 분명 좋은 성적이지만 뭔가 아쉬웠다. 기말고사는 전교 1등으로 목표를 세웠다.
하루 만에 끝나던 초등학교 시험과는 달리 중학교는 3일에 걸쳐 하루에 두 세 과목씩 시험을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반 1등이라는 이유로 고블린 선생님이 나를 유독 챙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범생의 반열에 올라선 듯한 기분에 잠시 취해 있었다.
그러던 중, 기말고사 수학 시험에서 사건이 터졌다. 시험은 컨닝 방지를 위해 줄마다 학년을 교차로 배치해 치러졌고, 1학년과 2학년이 번갈아 앉아 시험을 보았다. 그 때문인지 내게 배부된 시험지 3장 중 가운데 시험지가 중학교 2학년 시험지로 잘못 들어왔던 것이다. 나는 시험지를 받고 나서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문제를 마주하며 머리를 싸맸다.
“왜 이렇게 어렵지?”
하지만 그게 중학교 2학년 문제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결국 시험을 다 마치지 못하고 제출했고, 종이 울리자마자 다리가 덜덜 떨리더니, 결국 눈물까지 터졌다.
집에 돌아가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자, 엄마는 놀라며 학교에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보통 시험 문제와 정답이 이미 공개된 상태에선 재시험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고블린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건우가 반 배치고사 남자 1등인데 이건 너무하다.”며 강하게 재시험을 주장해주셨다.
결국 시험을 망친 당일 오후, 나는 교무실에서 똑같은 시험지를 가지고 혼자 재시험을 보게 되었다. 나 홀로 시험을 감독한 3학년 부장 선생님이 나의 풀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얼굴이 항상 벌겋게 달아 올라있고 키가 큰 중년의 남자 수학 선생님이셨다.
그는 아마 내가 재시험을 볼만한 실력이 되는지 확인해보려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서 100점을 맞았다. 똑같은 시험 문제였고 이미 한 번 풀어봤던 문제들이었기에, 틀릴 리가 없었다. 점수는 회복했지만, 그날의 긴장감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았다. 호랑이 부장님의 시선,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 마주한 시험지 한 장. 그 사건 이후로 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학년과 과목, 인쇄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학 선행학습을 조금씩 해왔고, 당시엔 중학교 2학년 수준의 문제까지 얼추 풀 수 있었다. 만약 선행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중2 시험지의 어려운 개념들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다른 시험지를 받은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1년 정도를 선행했다. 수학 선행의 장점은 분명했다. 새로운 개념을 미리 익혀두면, 실제 학기 중에는 반복적인 문제 풀이를 통해 그 개념을 더욱 깊이 체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반’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치 선행을 당겨버리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 어린 아이들이 과연 고등 수학, 예컨대 미적분을 진짜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계산만 반복 훈련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중학 수학을 배우며 인수분해 앞에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수학이란 건 결국 '왜 그런가'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어느 연령대에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계산 능력보다 사고력과 이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서둘러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