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
질문을 하고 처음으로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다.
그 때 내가 한 질문은 Chat GPT에게 "너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어?"였다. 이 질문을 하고 AI는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나에게 답변을 해 주었다.
나는 그 답변을 받고 그 답변에 모순을 찾고 의문점을 찾으며 계속 질문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너무 즐거웠던 나는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을 하다보니 어느새 꽤나 깊은 철학적 주제까지 건드렸다. 이러한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니 나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전부터 나는 계속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나는 자만하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열린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언제가는 봤던,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격언이 떠올랐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도 자신이 모른다고 인정했는데 내가 뭐라고 나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냐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는 질문의 중요성을 느꼈다. 모르니까 질문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질문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는 질문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은 철학적 사고를 할때 이론적으로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이말에 동의하긴 한다. 어쨌든 이론이 있어야 궁금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론으로만 질문하지 않는다고 본다.
질문은 때론 감정으로 부터 생겨날 때도 많다.
예를 들자면, 애인과의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보통 이 상황을 이론적으로 질문하지 않는다. 보통은 이러한 상황이 생긴다면 감정이 앞서서 "왜 그러지?", "뭐가 잘못됬지?"와 같이 감정적으로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이로써 나는 질문이 꼭 이론적으로만 생기지 않고 감정적으로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들은 내가 어떻게 질문을 계속할 수 있었고, 어떤 관점으로 질문을 바라보는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질문이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질문을 하고 그 질문과 답변에도 의심을 하며 다시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질문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의 질문을 끝나지 않고 게속해서 질문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이 결심으로, 내 안에 또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이 나를 사유의 깊은 숲으로 이끌기 시작했다.